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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내가 엘렌과 함께 있을 땐 꼭 한마디씩 던지곤 했다.

"야 샌님, 오늘도 머린의 자존심을 헐값에 팔고 있구만. 난 말야 너 같은 녀석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녀석의 독설이 아무리 거칠어도, 난 어떠한 분노도 느끼질 못했다.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내일 아니 오늘이 될지도 모르는 자신의 마지막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전쟁의 노예이기 때문 이다.



캡슐이 열리고 있다. 또 다시 우리 머린의 하루가 시작 된 것이다. 기지입구 방어임무를 부여 받았다. 출동이 없을 때에는 항상 주어지는 우리의 임무이다. 기지 안쪽에서는 마크의 말처럼 스타포트와 앞으로 충원될 조종사들의 생필품 보급을 위한 supply 건설이 진행 중이었다.

숨 돌릴 틈조차 없이 번쩍거리는 SCV들의 핵융합절단기는 전세가 얼마나 긴박한가를 보여 주 고 있었다. 작업은 3시간째 계속되었다.

마크의 SCV도 가끔씩 눈에 띄곤 했다. 그는 미네랄을 센터에 운반하느라 여념이 없 었다. 스타포트를 다섯개나 건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엘렌의 좋지 않은 상황 때문인지 더욱 신경이 쓰였다. 불안한 나의 심기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SCV만큼이나 바쁘게 만들고 있을 때, 갑자기 헬멧 안에서 경고램프가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 일까? 나의 궁금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군 수송선 5대가 기지 상공 9시 방향에 나타났다. 어떤 것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날고 있었다. 미네랄을 채취하던 SCV 몇 대가 재빠르게 이동했다.

불타는 수송선을 빨리 정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곧이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기지에 착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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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대로 SCV들이 손상된 부분을 고치기 위해 달려들었고, 해치가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SCV, 머린 그리고 메딕..



혹시나 엘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헬멧의 시야모드를 줌 모드로 전환하고, 가슴을 조 이며 그녀를 찾아보았다. 시선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의 모습이 비쳐졌다. 전투복은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고, 헬멧은 군데 군데 깨져 있었다.

온몸이 저그족의 피로 보이는 초록색 물질로 범벅이 된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이 비쳐질 때마다 나는 더욱 더 애타게 그녀를 찾으려 했다.

엘렌은 보이지 않았다.

억제할 수 없는 실망감과 허탈함이 몰려 왔다. 내가 그녀를 위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날 괴롭게 했다.

엘렌에 대한 안타까움을 채 정리하기도 전에 다시 경고램프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거대한 그림자가 기지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그림자가 내 몸 전체를 덮었을 때 나는 그 물체가 아까 착륙한 사람들의 기지에 있었던 COMMAND CENTER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CENTER가 서서히 착륙하면서 사단마크가 선명히 드러났 다.



"LAX" 소문은 사실이었다. LAXMOR 사단이 치명적인 공격을 받은 것이다. 막대한 피해를 입고 가까스로 우리 기지로 이전해 온 것이다. 도대체 이 막강한 사단이 어떻게 이 지경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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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막 : 인해전술



LAXMOR사단의 이전이 어느 정도 수습이 되고, 우리 사단의 스타포트 건설도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우리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LAX사단의 병력들과 함께 기지입구 방어진지의 이전작업을 수행하라는 것이다.

두 사단이 몰려있기에는 우리 기지의 조건이, 면적으로나 자원 매장량으로나 부족 한 면이 많다라는 판단이 있었던것 같다. 3대의 SCV차량과 2명의 메딕, 5명의 머린을 지원받았다. 우리 병력은 머린20명 메딕 7명 SCV차량 4대였다.

LAX 병력들은 여전히 지쳐 보였다.

어제의 기억들이 그들을 더 지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기지 앞이긴 하지만 짙게 깔린 워포그의 어둠은 여전히 우리를 긴장시켰다. 한발 한발 신중한 발걸음과 함께 예민한 시신경이 발동하였다. 가끔씩 불쑥 불쑥 나타나는 동물들의 모습에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목표지점까지 아무런 충돌 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다시 한번 SCV들의 부지런한 몸놀림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작업을 보위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갑자기 한 'LAX' 메딕 요원이 입을 열었다. "기지를 뒤덮었습니다.

"그녀는 약간 넋이 나간 상태에서 말을 이었다."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히드라 리스크들을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 부대의 그 용맹한 아크라이트 전차(시 즈탱크)들이 하나 둘 씩 무너져 나갈 때..." 그녀의 말이 너무도 비장해서 아무도 말을 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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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죽여도 죽여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적들의 모습은 마치 성난 파도와도 같았습니다. 미친듯이 갈겨대는 아군의 총탄세례에도 늘어나는 것은 적들의 숫자와 아군의 시체 뿐이었습니다. 이런 장난감들을 지어봤댔자, 그들에게는 별 두려움을 주지 못 할 겁니다.

" 아무도 말이 없었다. "당신부대 근처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확장기지 상황에 대한 소식은 없습니까?" 다급한 마음에 던진 질문이었다.

"다행히 그 쪽 지역은 아직 적에게 노출되지는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맙습니다." 그녀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엘렌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외에 그 어떤 불길한 상상도 덧붙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렌에 대한 기분 나쁜 상상을 억지로 잠재우며, 불안감을 추스리고 있을 때, 기지입구에 있던 벙커의 병력과 전차들이 우리쪽으로 이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쪽 SCV들의 작업이 끝난 것이다.

벙커 셋, 터렛미사일 타워 넷. 이동한 병력들은 벙커에 하나 둘씩 들어가기 시작했고, 요란한 굉음소리와 함께 아크라이트 전차 8대가 벙커 뒤에서 시즈 모드로 전환되었 다. 어제만 해도 참으로 든든해 보였을 방어진이다.

하지만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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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 -
다시 아침이 되었다. 여느 때와 같이 기지입구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건설된 스타포트 위에는 레이스 요격기와 수송선
이 꽤 많이 떠 있었다. 밤새 쉬지 않고 생산해낸 듯 했다. 불
쌍한 마크, 밤새도록 미네랄을 퍼 날랐을 것이다. 어제처럼 사
람들을 내려놓는 수송선들도 눈에 띄었다. 깔끔한 제복과 빛나
는 계급장, 그리고 어깨에 부착된 날개 마크. 내려진 사람들의
신분이 파일럿 장교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
들이 새로 만들어진 레이스 요격기와 수송선의 새 주인인 듯
했다. 조종사들은 센터 안으로 하나 둘씩 사라져 갔다. 뭔가
새로운 작전을 구상중인 것이 틀림없었다.

"해리, 저 녀석들 저렇게 허약하게 생겨 가지고, 잘 싸울 수
있을까?"같이 근무를 서고 있는 밥이 입을 열었다"글쎄...모르
긴해도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면, 쟤네들 백 명이 덤벼도 자네
하나를 못 당할걸?" 밥은 우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하하,
역시 해리는 사람 기분 띄우는 데는 소질이 있다니까. 안그래
챨리?" 챨리는 역시 말이 없다.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을 뿐
이다. "너는 사람 기분 깨는 데는 해리만큼 소질이 있구나."밥
의 재치 있는 논평이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동료들끼리의 한가
로운 대화였다.밥이 이런 저런 자랑을 또 늘어놓을 무렵.."펑"
소리와 함께 한줄기 섬광이 우리 진지 써플라이 방어막을 때
렸다. 어김없이 반짝거리는 경고램프와 함께 본부의 명령이 스
캐너 화면에 나타났다. "프로토스군 침투, 질럿, 드래군, 부대
로 추정, 저지요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