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소설에 출연시켜드리기로 한 분들이 계셨으나, 문학의 맛이 떨어진다는 판단 하에 없던 일로 하였습니다. 삼가 양해를 구하는 바입니다.
카오스(Chaos)
머리말 관찰자(spectator)
이세계에서의 태어나고, 그리고 스러져간 생명들. 그리고 그들이 남겨놓은 후세에의 궤적. 분명 혹자들의 생각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따른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리라. 그러나 나는 지금부터 그들이 남겨놓은 궤적을 이 앞에 펼쳐보이겠다. 적어도, 그것들은 내 머리속에 존재하는 현실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 그럼 그들의 흥망성쇠가 빚어낸 서사시에 우리도 한번 빠져들어 그들의 희로애락이 엮어내는 운명을 조용히 구경해보자.
지금부터 풀어놓을 것은 이세계에서의 전혀 다른 세월의 흔적을 담아놓은 것들이다.
프롤로그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past, now, and future)
인계. 성력 생성기 1938년
무척이나 평화로운 마을 무트.
그런데 마을의 분위기에 조금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겉보기에는 소년에 가까웠다. 나이는 14세쯤으로 보였지만 그 눈은 무언가 깊은 상처를 짊어진 채 유장한 세월을 살아온 존재의 그것이었다. 깊은 물과도 같이 파랗고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있는 눈이었다.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것처럼. 손에는 마법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길이는 자신의 키보다 약간 큰 정도였다. 그의 키도 역시 별로 눈에 띌 정도로 큰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검은 로브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는 샤프한 은발이었다. 소년이 은발인 것은 그리 흔한 일만은 아닌 것이 이 대륙 달루르의 통상이었다. 가슴에 단 표시에는 무슨 문자가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 대륙의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여행자에게 지신 미나시그무르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이보게. 내일 같은 축제일에는 여행자들에게 공짜로 푸짐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이 이 마을의 관례라네. 물론 노약자는 제외되지만 말일세. 지금 자네를 보니 한창 기운 쓸 나이인 것 같은데? 설령 마법학생이라 해도 말일세」
조금 말 많고 평범한 시골 촌로였다. 검게 탄 쭈글쭈글한 피부였지만 농촌에서의 고된 일에 단련되었는지 정정했다. 머리도 아직 세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피부에서 느껴지는 나이는 70대 이상이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외모와 달리 남에게 관습을 들이대며 슬쩍 일을 떠 넘기는 솜씨가 아주 볼 만했다.
「명상중인 사람을 방해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저는 이미 마법사란 말입니다. 무(無)의 키엘미르라는 칭호까지 붙었습니다만. 노인장. 죄송합니다만 다른 데 가서 알아보세요」
그러자 촌로가 부끄러움과 무안함으로 얼굴을 붉혔다. 이 대륙에서는 마법사 개인 개인이 제자를 모집한다. 보통 빨라야 16살에 독립하는 것인데 이 키엘미르라고 불린 소년은 그것보다 훨씬 어려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칭호가 붙는 것은 엄청난 대마법사거나 미래가 대단히 촉망되는 천재에게만 내려지는 특혜였던 것이다.
「미…미안하네. 미나시그무르께서 자네에게 대지의 장중함을 내려주시길 비네!」
보통 이렇게까지 정중한 말을, 그것도 자기 손자뻘 되는 녀석한테 하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마법사에게 마법학생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욕설과도 같은 무례였던 것이다.
「이 일도 무척이나 흥미로운데? 그리고 내일이 이 나라의 왕제일인 거고」
다음 날은 이 레오노르국(國)의 왕인 성왕 카르텔의 생일(통칭 왕제일 뮨)이었던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왕의 생일을 명절로 기념하는 매우 특이한 풍습이 있었다. 물론 왕이 바뀔 때마다 축제일도 바뀐다. 이 나라에서 오래 살라는 축복의 말은 보통 이렇게 표현될 정도다.
「뮨이 네 번 바뀔 때까지 사시구려」
곧이어 키엘미르는 마법사 특유의 잠에 빠져들었다. 무속성법술 명상(meditation)이다. 서서 자는 것과 거꾸로 매달려 자는 것, 심지어는 걸으면서 자는 것을 자유자재로 한다. 육체는 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은 깨어 있을 때도 있기 때문에 조금 비효율적인 면도 없지 않다. 몸 주변에 상황에 따라 온기와 냉기를 돌게 하여 냉온방을 조종하는 형태의 변형도 있다고 한다. 힘이 극대화된 마법사인 위저드(wizard)들은 아예 정신까지 쉬는 것마저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 항간에는 이 기술이 여관비를 아끼기 위한 것이라는 악담도 있으나, 그들이 단순한 질투에서 그런 말을 퍼뜨린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듯 하다. 그만큼 이 기술이 꽤나 효율적임을 알려준다.
순간 교외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세번씩 간격을 두고 세번. 아무래도 축제일 전야에 울려퍼지기는 조금 힘든 것 같은 경계의 표시였다. 뒤이어 뭔가가 폭발해오른 듯한 굉음이 섞여 들려왔다.
「놈인 것 같네.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순간 키엘미르가 잔영을 남기며 사라졌다.
세계관
지리
큰 대륙인 달루르. 그리고 달루르의 최상단에는 영구동토가 자리한다. 영구빙벽 프로즌 화이트에는 고대마신 아스모데우스의 육신이 남아 있다. 그리고 대해 오케아노스해(海)에는 폭풍군도, 그리고 폭풍군도를 이루는 여러 섬들의 중심인 스톰바인드가 떠 있다. 먼 동쪽에는 동방도가 있다. 다소 특이한 면이 있는 이들의 문화는 서방도 달루르와 달리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들의 언어 역시 특이하다.
그리고 먼 서쪽에는 광휘계 니르바나가 있다고 전해진다. 그곳에 가본, 아니 가봤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칼드미라 공국의 창건자 용왕(勇王)부르네트와 그 동료 위저드 무크이네드뿐이다. (무크이네드는 순례자(pilgrim) 중 하나로, 불사신이라 전해지는 인물이다)일설에 따르면 그곳은 신계로 통한다고 전해진다. 이곳에 출입하는 것은 신들에 의해 금지되어 있으며, 신들이 인정한 영웅만이 이 곳을 밟을 권리가 있다(지금까지 수많은 야심가 나부랭이들이 이 곳을 찾았으나, 돌아온 것은 처참히 으깨진 배의 파편들뿐이었다고 한다)
세상은 셋으로 갈려 있다. 신계, 인계, 마계, 그리고 혼돈이 빚어낸 무(無)의 차원 카오스이다.
이런 좋은 소설을!!
인문계인 저도 감탄할 정도의 소설이였습니다.
마에상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