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길어질 듯 싶어서 부득이하게 이렇게 답변처럼 쓰게 되었네요. ^^;
뭐 충고나 조언보다는, 제가 어렸을 때 생각이 잠시 나서 이렇게 몇자 끄적거려보려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중이니, 쓸데없는 소리나 한다고 욕은 하지 마세요. ^^;;
한 7-8년 쯤 되었을 듯 싶네요.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이.(이거 나이만 먹었다고 자랑하는 꼴일런지도.. -_-a) 제 아버지는 님의 아버지 못지 않게 권위적이고, 강압적이었으며, 공부 지상주의자셨더랬습니다. TV나 게임은 꿈도 못 꾸었고(물론, 그다지 착한 아들은 못되는 지라, 오락실을 주름잡았습니다만. ^^;;) 심지어 제가 방에서 책 읽는 것조차 못마땅해하셨지요. 항상 집에 돌아오면 책상 앞에만 앉아있어야 했고, 어쩌다 귀가시간이 늦어지곤 할 때면 심하게 혼이 났었지요. 게다가 제 아버지의 잔소리도 사람을 정말 짜증나고 미치게 하는 스타일이랍니다. 한번은 오락실에서 놀다가 집에 늦게 돌아왔는데, 맞다가 손가락 뼈가 부러지기도 했었더랬습니다.(물론 그 손에 기브스를 하고도 오락실에 가는 투혼을 발휘했었지요. ^^;)
혹시 용돈을 받으십니까? 전 집에서 용돈 받아본 기억이 별로 없군요. 언제나 제 수중에 돈 생기면 공부가 아닌 다른 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셨나봐요. 그래서 전 친구들에게 시험답안을 컨닝시켜주고 돈을 받거나, 포르노 테입을 방송실에서 복사해서(아아... 이런것 가르쳐주면 안되는데. ㅜ.ㅜ) 팔아 돈을 모았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당시에 유행하던 패밀리, 슈퍼패미컴, 새턴, 플스등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고 집에서 게임이라도 할라치면 부모님이 잠이 드신 다음, 제 방 침대 밑에 숨겨둔 고물 티브이와 역시나 숨겨둔 게임기를 꺼내어 밤새가며 게임을 했답니다.(뭐 학교에선 대부분 잤겠지요? ^^;;)
어린 나이에 블루테리님과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원망도, 미움도 컸었지요. 그러다가,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쯤, 아버지의 공장이 부도가 났고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간 그 해 여름에 긴 도피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가 결국 구속되셨더랬습니다. 학교에선 입시준비랍시고 수십권의 교재를 요구하지만, 그걸 살 돈이 없었어요 그땐. 쌀 살돈이 없어 밥도 못먹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겠습니까.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했고, 힘겹게 하루하루 버텨내는 어머니와 형에게 고맙기도 했었습니다. 그토록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시면서도, 정작 내가 공부하는데 도와준 것이라곤, 책상 앞에 앉아있으라는 윽박지름 뿐이었던 아버지. 단 한번도 남들 다 하던 과외받아본 기억도 없고, 남들 다 다니던 학원을 다녀본 기억도 없군요.
그렇게 그해를 보내고 나서, 전 나름대로 수능을 보고, 서울에 있는 모 대학들에 원서를 넣고,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 합격을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대학생이더라..라는 표현이 딱 맞겠군요. 이제 막 입학을 하고 아..내가 대학생이 되었구나..라는 자각을 할 무렵, 아버지가 출소하셨습니다. 광주에 있던 교도소 앞에서, 두부 한모를 사들고 아버지가 나오길 기다렸다가 몹시도 초췌하고 쇄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 눈을 차마 마주치질 못하고 두부를 한입 깨물고 나서는, 저와 목욕탕엘 갔었지요. 참으로 오랫만에 아버지와 벌거벗고, 서로의 등을 밀었습니다.
처음으로, 항상 권위적이고 당당하기만 하던 아버지의 등이 왜소해보였습니다. 수감생활 하시느라 약해진 탓은 아니었어요. 그제서야, 알겠더군요. 아버지가 내게 왜 그랬는지. 당신의 고지식한 생각들, 당신의 고집스럽고 위압적인 모습들... 그것들을 지켜내지 않으면 내게 당신은 여리고 약한 힘없는 한 남자일 뿐이라는 사실을 들켜버릴지도 몰랐던거예요. 내게 당신이 버팀목이자, 든든한 보호자이기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들켜버리는 것이 그렇게 두려웠던 거예요. 그 두려움과 수치심이, 절 그렇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다루게 만들 정도로 당신의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들었던 거였어요...
가엾더군요. 아버지라는 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버텨온 당신의 삶이. 아버지라는 이름을 쉽사리 포기못할 정도로 용기없던 그 남자가.
그래서 눈물이 많이 났었습니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있는 힘껏 등을 밀기만 했었어요. 아프다며 투정부리실 때까지...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난 이 남자가 사는 방식으로는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리고 그 노력 자체가 하나의 의미가 되겠지만 난 결국 본질적으로 아버지 이상의 사람은 될 수 없음을. 아버지는 이미 나에겐 하나의 벽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래도 아버지한테 그러면 되느냐! 나아준 부모인데 그 은혜를 모르냐!라는 식의 도덕적인 훈계는 늘어놓지 않겠습니다. ^-^ 그런 것들이 더 님을 힘들게 하고 있는 요소임을 잘 알고 있거든요.
다만, 다시 한번 아버지를 돌아보세요. 자식에게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런 식으로 밖에 행동하지 못하는 저 약한 남자가 가엾지 않나요..? 아버지가 아둥바둥 지켜내려는 그 권위가, 그리고 당신의 보호자로써의 역할이 많이 못마땅하고 힘들겠지만 그럴수 밖에 없는 아버지를 동정하며 가여워할 수 있을 정도의 포용력이 님에겐 없는건가요...?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과 님의 부모님을 비교하진 마세요. 그들은 서로 다른 사람이고, 그래서 자식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도 다르니까요. 비교란, 필연적으로 자신보다 나은 상태의 그 누군가를 바라보게 되어 있으니까 스스로 더 비참해질 뿐이랍니다. 절대, 비교하지 마세요. 아니 비교하려면 제 아버지와 해보세요. 제 아버지는 제가 학생 때 밥 조차 제대로 먹여주지 못한 사람인걸요. 그런 부모도 있어요. 지금까지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지 않았음은 '기적'이라고 믿고 살고있는 이 나이 조금 더 먹은 사람의 부모님들 보다 낫지 않나요?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스스로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아버지와 싸우지 말고, 대화를 하세요. 서로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해하도록 노력해보는 대화. 대화가 불가능하다구요? 님의 아버진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라구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다른 방법을 통해서 아버지를 이해시키세요. 가족이란 그렇게 쉽게 놓아버려도 될 만한 끈은 아니거든요. 혹시 '슈팅 라이크 베컴'이란 영화를 보셨나요? 그 주인공 제스는 놀랄만큼 현명하게 부모와의 갈등을 해결해나가지요. 부모와 충돌하는 정면돌파의 방법이 아니라, 약간 우회해서 말입니다. ^^ 님도 그럴 수 있어요. 정면으로 부딪혀서 갈등을 조장하지 말고, 약간 우회하는 방법을 택해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그래도 믿어보세요. 그러면 길이 보일지도 모른답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참 길었지요? 님의 글을 보니, 제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라 문득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디게 되었거든요. ^^;; 쓸데없는 이야기라 생각하시면 그냥 말많은 아저씨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겨 주시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조금만 더 노력해보세요.
아... 그리고 전 지금 어떻게 지내냐구요? 여전히 아버지와 투닥거리며 지낸답니다. 그리고, 여전히 아버지의 인생은 한심하다고 생각하고, 여전히 아버지를 싫어한답니다. 다만, 이젠 돌아서면 웃으며 당신을 볼 수 있을 만큼의 여유와 이해가 생겼어요. ^-^ 님도 그러실 수 있으실거라, 믿어요.
그리고 힘들어도, 스스로를 놓치지 마시길...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