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을 보고... 센과 치히로라는 두 등장인물이 중심일거라 생각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여기에 의도치 않은 함정을 숨겨두었더군요.
비트겐슈타인이 그랬습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에 의해 경계지어지고 그 범주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따라서, 알고 있는 어휘의 양은 사고의 다양함과 비례하고, 상대방에 대한 호칭은
관계의 성격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관계 자체를 규정짓기도 하지요..
이러한 생각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름.. 호칭에 대한 생각들을 감독은 펼쳐내어
보입니다. 이름을 잊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이름을 되찾음으로써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개념정의가 가능해지는 상황. 꽤나 다양한 생각의 고리를
던져주는 대목이었답니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줄기는 치히로의 성장드라마였습니다.
꽤 힘겨운 경험들과 다양한 친구들을 통해, 어리고 응석받이였던 치히로는 강하고 성숙한
아이로 자라나죠.
그리고 유바바의 어린 아들(슈퍼 초 우량아. -_-)도 마찬가지이고.
성장,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에반게리온이나 기타의 영화들에서
자주 등장하는 보편적인 소재이지요.
물욕에 찌들지 않고, 타인에 대한 믿음, 공동체적 삶에 대한 희망을 깨달아가는 성장을
이야기하는 하야오 감독의 영화는 자칫 평범하고 특색없이 비추어 질지도 모르는
교과서적인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론 그런식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는 가장 커다란 재미는... 캐릭터를 관찰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느 것 하나 귀엽고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특히.. 유바바의 아들과 유바바 머리를
한 새가 변한 쥐와 파리같은 새가 펼치는 앙상블 코미디는 정말... ^^;;
뭐 이외에도.. 센과 치히로에서 읽어낼 수 있는 부분은 꽤나 많습니다.
월령공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볼 수도 있는 자연과 문명의 공존에 대한 탐구도
엿보였구요.. 뭐 열마디 말로 하는 것보다 한번 보시는게 더 좋겠죠? ^^
언젠가 토토로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가슴 찡함을 다시 한번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뻔하고 식상하고 바른 이야기를 뻔하지 않고 식상하지 않게 풀어내는 하야오 감독의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