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우승(優勝)의 기록(記錄)


로하(盧H)는 성명과 본적이 분명치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행적(行跡) 또한 분명치 않다.
왜냐 하면 PW 사람들의 로H에 대한 관심은 다만 그에게 동인지공유를 부탁할 때나, 그를 두고 농담할 때에만 국한되어 있었으므로 지금까지 그의 '행적'엔 유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H 자신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남과 말다툼할 때 이따금 짤방을 전송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도 8살때는……네까짓 놈보다는 훨씬 더 순수한 미소년이었어! 네 따위가 무어야!"

로하는 집도 없이 PW의 챗방에 살고 있었으며 일정한 직업도 없었다.
다만 고닥공질을 하면서, 야겜이 꼴리면 야겜을 하고, 리듬게임이 꼴리면 리듬게임을 하고, 로리가 꼴리면 위니를 팠다.
다운로드가 좀 오래 걸릴 때는 임시로 프루나를 쓰기도 했으나 주로 위니를 사용하곤 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씹덕자료가 꼴릴 때에는 로하를 생각해 내나, 그것도 시킬 일이 있을 때뿐이지 그의 '행적'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한가해지면 로하라는 존재조차도 잊어버리는 판국이니 '행적'은 더더욱 말할 나위도 없다.
꼭 한 번 오셀롯이, "로하는 정말 인서울 감이야!"하며 칭찬한 적이 있었다.
이 때 로하는 온통 겨드랑이를 오픈한 채로 멋적은 듯이 듬직한 풍채로 오셀롯 앞에 서 있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이 진심인지 빈정거림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았으나, 로하는 대단히 기뻐했다.

로하는 또한 자존심이 강했다.
PW 식구들은 하나같이 눈에 차지 않았고 심지어 두 분의 'MSF'에 대해서까지도 일소(一笑)의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표정을 지었다.
무릇 'MSF'이란 장래 업계를 지망하는 것이다.
흑(黑) 나으리와 오(O) 나으리가 식구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있는 이유도, 조자룡 헌창논술을 좀 한다는 것 이외에 두 사람 모두 고차원의 씹덕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유독 로하는 마음 속으로 특별히 존경한다는 표시를 하지 않았다. '내가 운영자였더라면 더 훌륭했을 거야!'하고 그는 생각했다.
게다가 몇 번 배페로 들락거렸던 일은 자연 그의 자부심을 더욱 강하게 했다.

그러나 한편 그는 같은 씹덕들까지도 퍽 경멸하였다.
예컨대, 가슴 길이가 두 자가 넘는 여자를 PW에서는 '거유'라고 부르며, 그도 '거유'라고 불렀는데 의 사람들은 '누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것은 틀린 것이며 가소로운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로리물을 공유할 때 PW에서는 모두 원본으로 오가는데 씹덕들끼리는 요상한 번역에다가 자기네 커뮤니티 이름을 찍어서 자기네 것인양 배포했다.
이것도 틀린 것이며 가소롭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PW 사람들이야말로 세상을 모르는 가소로운 시골뜨기들로 그들은 씹덕들이 번역한 동인지는 본 적도 없다는 것이다.

로하가 '옛날에는 순수 미소년이었고', 견식도 높고, 게다가 '정말 고닥공'이니 본래 '완벽한 인간'이라고 할 만하지만, 가련하게도 그에겐 약간의 체질상의 결점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놀림을 받는 것은, 그의 겨드랑이에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냄새 스팟이 몇 군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하의 생각에도 비록 그의 몸에 있는 것이기는 하나 자랑스럽게 여겨지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곧 '암내'라는 말뿐 아니라, '겨드랑이'과 비슷한 발음의 말조차 꺼려했으며, 그것이 점점 더 확대되어 '냄새나다'라는 말도, '겨털'이라는 말도 금기로 삼았고 더 나아가서 '덕후'이라던가 '씹덕'이라는 말까지 금기시하는 것이었다.
그 금기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고의든 아니든 로하는 겨털까지 벌겋게 되도록 화를 내었다.
상대를 어림쳐 봐서 말솜씨가 좋지 않은 놈이면 마구 말을 돌리고, 기운이 약한 놈이면 의자를 집어던지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대체로 로하가 당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는 차츰 방침을 바꾸어 대개는 요상한 짤방이나 보내기로 했다.

로하가 '짤방전송주의(主義)'를 채택한 뒤로 PW의 건달들은 더욱더 그를 놀려대는 것이었다. 만나기만 하면 짐짓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이구, 겨드랑이다!"

로하는 틀림없이 성을 내고 노려본다.

"여기 원래 암내가 나는군 그래."

그들은 결코 두려워하지 않았다.

로하는 할 수 없이, 따로 보복할 말을 생각해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네깐 놈들과는 상대도 안 돼……."

이 때 그는 마치 자신의 겨드랑이에 있는 것은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체취의 배출이지, 평범한 암내스팟이 아닌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로하는 고닥공 모드이므로 고닥공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는 걸 알고서 그만 말을 잇지 않는 것이었다.

건달들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를 계속 놀려대어 마침내 치고 받는 싸움이 된다.
그러나 로하는 형식상으로는 패배한다. 놈들에게 글자를 허옇게 해서 숨겨놓은 부분을 드래그로 폭로당하고, 글에 퍽퍽 너댓 번 악플이 처박힌다.
건달들은 그러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간다.
로하는 잠시 동안 우두커니 서서 '내가 씹덕후놈에게 얻어맞은 걸로 치지. 요즘 PW는 돼먹지 않았어…….' 하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는 그도 만족해서 의기양양해 가버린다.

로하는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나중에 하나하나 말해 버린다.
그래서 로하를 곯려 주는 모든 사람들은 그가 이러한 일종의 정신적 승리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놈들이 그의 글에 악플을 융단폭격할 때는 먼저 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로하! 이것은 씹덕이 선량한 고닥공을 이지메하는 게 아니라 정상인이 씹덕후를 갱생하는 거야. 네 입으로 말해 봐! 정상인이 씹덕후를 갱생하는 거라고."

로하는 양손으로 암내 풍기는 겨드랑이를 가리고, 머리를 꼬며 말하는 것이었다.

"씹덕후를 갱생하는 거야! 됐어? 나는 덕후야. ― 이래도 놓지 않겠어?"

씹덕이라고 했건만 건달들은 결코 놓아주지 않는다.
늘 하던 대로 최근의 글을 골라 퍽퍽 대여섯 번 악플이 달리고 나서야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로하도 혼이 났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10초도 지나지 않아 로하도 역시 만족하여 의기양양해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입으로만 공부하는 고닥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입으로만 공부하는'이라는 말을 생략하면 남는 것은 '고닥공'이라는 말이다. 수능 수석도 '고닥공'이 아닌가?

"네 까짓 것들이 다 뭐냐?"

로하는 이러한 갖가지 묘수로 원수들을 굴복시킨 다음 유쾌하게 배페로 달려가서 유치한 자작짤방을 몇 개 올리는 것이었다.
거기에서 또 다른 사람에게 한바탕 놀림을 당하거나, 입씨름을 하다가, 또 이기고 나서, 유쾌하게 현실로 돌아가면 머리를 쑤셔박고 자 버리는 것이었다.

만약 시간이 있으면 그는 포포루 가로우를 하러 간다. 한 무리의 덕후 또는 초딩들이 채널리스트에 찌질찌질 앉아 있는데,
로하도 얼굴에 땀을 뻘뻘 흘리며 그 가운데 끼어드는 것이었다. 그는 자칭 30위였다.

"전 약캐 개토 합니다!"

"난 프리맨해준다 ㅋㅋㅋ"

상대 초딩이 게임 시작을 알린다. 그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읊어대는 것이었다.

"개토 갖고 지냐 병시나 이 킹오브하다 앉아서 작은발만 누를 후장새끼"

"이런……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럴 뿐이야!"

로하의 코인은 이런 노랫가락을 타고 초딩따위에게 점점 소멸되어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코인이 없어 방에서 밀려나고 만다. 그러나 뒷전에 서서 남들의 승부에 마음을 졸이며 끝까지 게임판을 지켜본다.
그리고 판이 끝나면 아쉬운 듯 현실로 돌아간다. 다음날은 눈이 퉁퉁 부어 씹덕질하러 나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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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소굴 PW를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