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들은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 최정례
갯벌에 꼬물대던 작은 게들이
갑자기
천지개벽의 지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일제히 정지한다
나는 아무런 의도가 없어, 없어
너희를 잡아 다리를 부러뜨릴 생각도
찜쪄 먹을 계획도 없다구
그래도 꼬물거리던 그들은 내 기척에
기겁을 하고
눈의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뻘 저 편을 바라본다
바라보는 척 게눈을 뜨고 내 눈치를 살핀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처럼
그들이 내 발길을 피해
일제히 재빠르게 몸을 옮길 때
순간의 무수한 게걸음에
수평선이 빙그르 도는 것 같다
아찔하다
하늘은 뻘로 바다는 하늘로 뒤집힌다
난 바람을 쐬러 방파제를 걷는 것뿐인데
바람이 옷자락을 펄럭일 뿐인데
섭섭하다
나도 죽은 척 서 있었는데
게들이 구멍 속에 한쪽 다리를 걸치고
죽은 척 살아서 내 눈치를 볼 때
눈치 보지말고 날래 돌아오라우 동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