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 아직 컴퓨터가 그다지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 그 시절 아이들에게 컴퓨터에 대한 동경이란 만화영화 속의 로봇 이상이었다.
그 무렵 L여고 3학년 직업반 학생들은 컴퓨터에 빠져 있었다.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귀한 물건인지라 그들로선 신기하고 재미있기 그지 없었다.
그들은 취업을 위해 실시하는 컴퓨터 수업을 목이 빠지라 기다렸고 그 시간만큼은 미팅 이상으로 시간이 잘 가버렸다. 늘 아쉬움 속에서 그들은 그 수업을 마쳐야만 했으니.
여름방학 하루 전날.
세영, 진희, 현애. 이렇게 세명은 하나의 작은 계획을 세운다. 그것은 바로 방학식이 끝나고 학교전체가 비게되면 몰래 컴퓨터실로 잠입해서 저녁까지 컴퓨터에 빠져 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 당시 컴퓨터는 워낙 귀한 것이라서 관건장치가 철저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에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그학교에서 알아주는 문제아들이었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세영과 그 일당들은 방학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학교 건물안으로 숨어 들었다. 그들은 화장실이며 교실을 전전하며 사람들이 모두 다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나른한 오후 2시.
이제 건물에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들은 서서히 숨을 죽여가며 컴퓨터실로 향했다. 복도에서 얼핏본 운동장의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 개미한마리 없어보였다. 그리고 멀리서 막 교문을 닫고 있는 수위아저씨의 모습도 보였다.
컴퓨터실은 지하에 있었다.
다행히도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작은 흥분감마저 느끼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부푼 가슴을 안고 컴퓨터를 켰다.그리고...
신나게 시간이 흘러갔다.
컴퓨터가 주는 재미속에 그들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히히덕거리며, 그렇게 흠뻑 빠져만 있었다.
"야 지금 몇시야?"
문득 생각난다는 듯, 세영이 모두에게 물었다.
"엉? 시간?...이런 벌써 이렇게 되었네? 저녁8시야!"
지하인지라, 창문이 하나도 없어서 날이 어두워지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정신없이 컴퓨터에 빠져 있던 그들이었지만 그제서야 그들은 덜컥 겁이났다.
"야, 이제 그만 하고 빨리 나가자!"
"그 그래..."
그들은 갑자기 산만할 정도로 서두르기 시작했다. 어쩌면 뭔가 불길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인지도...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어느센가 문이 잠겨져 버렸던 것이다.
낭패였다. 이제 부터 방학이라 학교는 비어 있을 텐데...
그들은 문을 두드려 보았다. 소리도 질러 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문 위에는 천정 바로 밑에 위치한 작은 창문이 하나 있긴 있었다. 그러나 너무 높았고 그 창조차도 굉장히 작았던 지라, 고양이나 드나들수 있을 정도였다.
일이 이렇게 까지 되자 그들은 덜컥 겁이났다. 아니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영원히 탈출할수 없다는 그 알카트라스 감옥에라도 갖힌 기분이었이에...!
"진정들 해, 아마 누군가가 오겠지...설마, 이대로 계속 갖히기야 하겠어? 안 그래?"
제일 키가 큰 진희가 애들을 진정시키며 가방속에서 과자한봉지를 꺼집어 내었다. 사실 그들은 이미 두끼나 굶은 상태였다. 아이들은 허겁지겁 과자를 먹어치웠다. 그들은 지쳐있었다.
더 이상 소리지를 기력마저 없었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밤.
현애는 악몽속을 허우적거리다가 간신히 잠에서 께어났다. 그러나 악몽에서 께어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1미터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뿐이었다. 눈을 떠도 절망감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지독한 허기짐...! 현애는 아직 악몽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처량한 울음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봐도 결코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울면서 다시 잠을 청했다. 자고 일어나면 이 무서운 악몽속에서 완전히 께어나기를 바라면서.
다음날. 아침.
잠에서 껜 세영,진희,현애는 암담했다. 여전히 그녀들은 악몽속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자, 모두들 힘을 내! 다시한번 소리를 질러 보자. 있는 힘을 다해서 소릴 지르면 밖에서 들을수 있을거야. 자 어서."
다시 모두를 진정시키는 진희의 말에 아이들은 미친듯이 소릴 질러 보았다. 그리고 문도 두드려 보고 벽도 쳐 보았다.
그러나 모두가 쓸대 없는 에너지 낭비였다.
아무도 들어주는 이는 없이, 그녀들의 기력만 빠져 나갔다. 이제 그녀들에겐 걸을 힘조차도 남아있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다시 저녁이었다. 하루 반을 꼬박 굶은 그녀들은 비실비실 쓰러져 갔다.
그 다음날.
바닥을 기던 현애가 우연히 컴퓨터실 구석부근에서 누군가가 먹다가 버린 썩은 빵조각을 발견했다. 순간, 세영과 진희는 실성한 사람 마냥 달려와서 그 빵을 빼았아 버렸다. 현애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썩은 빵은 순식간에 그들의 배속으로 사라졌다.
지독한 허기였다.
저녁이 되자, 제일 허약한 현애가 제일 먼저 혼절해버렸다. 아직 심장은 뛰고 있었으나 정신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울고 있었으나 울 힘조차도 이제 없는것 같아 보였다. 이대로 두면 조만간 완전히 숨을 거둘것이다. 그러나 세영과 진희로선 어떻게도 손을 써볼 도리가 없었다. 그냥 지켜보는 수 밖에는.
그날밤 현애는 눈물이 뒤범벅된체 완전히 숨졌다.
6일째.
새벽에 눈을 뜬 세영은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야 말았다. 어둠속에서 진희가 현애의 시체를 허겁지겁 뜯어먹고 있었다.
"진...진희야..."
진희가 무서운 눈으로 뒤돌아 보았다. 어둠속에서 그녀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세영에게로 다가왔다. 오른손에는 현애의 뜯겨나간 종아리가 쥐어져 있었다.
"너도 먹어... 잔말 말고 처먹어!...어쩔수 없잖아. 현애는 이미 죽었어. 우리가 죽인 것도 아니잖아...우리라도 살아남아야지...어떻게던 살아남아야 할게 아냐!"
이미 진희는 이성을 완전히 잃어있었다. 세영은 물씬 풍기는 피비린내에 구토를 하려 했다. 그러나 먹은 것이 없는 지라 아무것도 토해낼 수 없었다.
역겨운 피비린내와 처절한 어둠만이 가득한 그 새벽...세영은 현애의 시체를 함께 뜯었다...피로 갈증도 체웠다...!
15일째.
이미, 현애의 형체는 사라진지 오래다.
세영과 진희는 벌써 며칠째 또다시 허기짐과 싸우고 있었다. 그녀들의 몸에 더이상 지방은 남아 있지 않은 듯 했다.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몰골, 그 자체였다.
"지...진희..야... 우리...이.이젠 진짜로...죽는 거구나...흐흐흑...!"
세영은 흐느꼈다. 그러나 진희는 말할 기운마저도 잃어버렸는지 꼼짝도 않고 엎어져 있었다.
"흐흐...흑...정신차려...흐흑, 사..사람살려...누..구 없어요..."
기어들어가는 듯한 개미목소리로 세영은 중얼거렸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 아무런 구조의 손길도 없었다.
밤.
인기척에 세영은 눈을 떳다.
그리고...
그녀가 제일 먼저 본 것!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얼굴이었다!
날카로운 펜을 꼭 쥐고 우뚝, 서 있는 진희의 얼굴!
그녀의 얼굴이 이렇게도 무섭게 생겼다는 것을 세영은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리고...그 펜,
펜은 바람을 가르며 자신의 목줄기를 향하고 있었다.
정말 종이 한장차이로 세영은 그것을 피했고 진희는 몸을 기우뚱 거리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눈 깜짝할새에 벌어졌다.
세영도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녀는 진희의 팔을 힘껏 께물었다.
진희는 비명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럴 기력이 이미 없었으리라.
그리고 세영은...
진희의 목줄기를 힘껏 물고 늘어졌다.
뜨뜻미지근한 핏물이 울컥, 세영의 목구멍속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해서 그 목줄기를 놓치 않았다.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22일째.
세영은 삼일 전 부터 이제 자신의 살을 뜯어먹고 있었다. 더이상 자신에게 먹을 것을 제공해줄 친구도 없었기에...
그녀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더이상 살아야겠다는 의지조차 없었다.
혼이 빠져 나간 멍한 그 얼굴.
죽음이 엄습해오기 직전의 그 얼굴이었다.
죽음!!!
그렇다. 이제 그녀 차례였다!!!
개학후.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한구의 말라비틀어져 썩은 시체와 그 형체를 알수 없는 몇개의 뼈조각들이 발견되었다.
유래가 없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 한 것은 바로 다름아닌...
피로 물들어 있는 작은 노트 한권이었다.
그 노트는 세영이 죽기 직전 까지 써 내려간 일기였다.
그리고 그 일기의 제일 마지막 구절이...
모두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기에 충분하였다!!!
모든것은 계획된 살인!과연 인간이 이렇게 까지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라는 처절함에 그들은 몸서리 칠 수 밖에 없었다!!!
세영의 일기中
-아아..이제..의식이 없다..이대로 곧 죽어버리겠지...무섭다...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온다...차라리 빨리 죽고 싶다...죽음 보다 더한 공포...참을 수 없다...정말...참을 수 없는 것...그것은...어둠속에 갖혀 버린 것이 아니다...친구들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것도 참을 수 있었다...친구의 시체를 뜯어며 허기짐을 체운 것도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결국 홀로 남겨져 끝도 없는 고독 속에서...나 자신의 살을 씹어야 하는 것...까지 참을 수가 있었다......그...그러나...정말로...무서웠던 것은...도저히...참을 수 없었던 것은......매일 매일...문 위의...그 작은 창문을 통해...나를...끊임없이...지켜보던...수위 아저씨의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마지막이 꽤나 섬뜩하더군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