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 시절은 참으로 역사의 격동기였다. 암울한 독재 권력의 막바지에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가 했더니 다시 더 혹독한 군사정권의 시대가 열렸다.
교정에 몇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노라면 사복 경찰의 날카로운 눈길이 훑고 지나갔다. 일반 언론의 기사들은 물론 학생신문의 기사까지 검열을 받던 시절이었다.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던 몇 선배들은 별 방법을 다 써가면서 시위 학생들을 모았다. 도서관 3층에 매달려, 동창회관 5층에 걸터앉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식당에서 구호를 외치며... 그리고 하나같이 끌려가 갇힌 몸이 되곤 했다. 참으로갑갑한 시절이었다.
이때 학생들은 자기 표현의 하나로 마당극'을 공연하곤 했다. 권력을 가진 자와 지배당하는 자의 갈등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희곡이 마당극의 대본이 되곤 했다.
2학년 때던가. 학교 연극반에서 윤대성의 [노비문서]를 공연했다. 사실 공연 허가가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억눌린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는 노비들, 몽고의 침입에 맞서 싸우면 노비문서를 불살라버리겠다는 권력자들의 다급한 약속, 자기 나라를 위해 몸바쳐 싸우는 노비들. 그러나 깨어진 약속. 여기에 부사의 딸 지영과 노비 강쇠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진다.
5천명이 넘는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들었다. 공연자와 관객이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마당극판에 횃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무대 둘레에, 스탠드에 사람이 꽉차고 일부 학생들은 나무에 기어올라 구경하기도 했다.
자유를 위해 항거하는 노비들이 일어설 때는 모두 함성을 질렀다. 노비들을 기만하는 권력자들의 횡포와 폭압의 장면에서는 모두 야유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리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의 장면에서는 숨을 죽였다.
암울한 시대, 억눌린 젊음.
"우린 사람이 아니오, 노비들이요."
"노비 문서를 불살라라."
"노비들은 허망한 말로 사랑을 농락하지 않소. 다만 몸으로 사랑할 뿐이요."
......
배우의 대사 하나 하나가 철렁 가슴 속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켰다.
학생들은 짓눌리고 짓밟힌 노비의 심정이 되어 함께 소리치고, 함께 일어서고, 함께 춤을 추었다.
함께 어깨를 겯고 운동장을 마구 돌며 춤추고 뛰는 뒤풀이도 횃불과 함께 잦아들 무렵 관중들은 운동장을 나와 교문으로 걸어갔다.
누구의 입에서인지 모르게 양희은의 [아침이슬]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노래는 점점 커졌다. 수천 명 학생들이 손에 손을 잡고 [아침이슬]을 부르며 교문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은 '장엄함' 바로 그것이었다. 터져나오는 물길 같기도 했고 타오르는 불길 같기도 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부분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절규하는 듯했다.
앞에는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전경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날 스크럼을 짜고 구호를 외치며 달려나가는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비장한 마음으로 불렀던 아침이슬의 행렬은 반독재 민주화를 직접 외치는 시위 이상으로 강한 힘을 발휘했으리라 생각된다.
시위대열에 서[아침이슬]을 부르던 스물 살 언저리의 대학생, '꽃잎처럼 스러져간' 사람들, 갇히고 박해받은 사람들, 자신의 젊음을 불사른 사람들에게 빚진 자 되어 다시금 작은 소리로 [아침이슬]을 불러본다.
<아침이슬-양희은>
긴 밤 지세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 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에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