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은 무척 더웠다. 그때... 그 여름...
열한 살 무렵,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하시던 약 회사를 물려받아 사업이란 걸 하시다가 실직자가 되셨다.
연못이 있던, 보리수나무와 배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우리집의 예쁜 뜰은 삭막한 공장이 되었다가, 아예 남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버지에게 남은 것은 빚과 실의 뿐.
우리 식구는 산 기슭에 지어진 작은아버지집으로 이사를 했다. 집 바로 옆에는 두 개의 무덤이 있었다. 밤에 집으로 갈 때면 집 뒤의 컴컴한 산길이 깊은 동굴처럼 느껴져 무서웠다.
잔디가 심어졌던 정원이며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연못은 갈 수 없는 고향처럼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변두리 산의 땅값은 쌌던가보다. 우리가 살던 곳의 뒷산은 아버지가 사두셨던 산이라고 했다. 그래서 넷째 고모, 작은아버지가 그곳에 집을 지으셨고, 우리식구도 한 칸 차지할 수 있었나보다.
여름방학 내내 아버지는 어디에도 출근하지 않으셨다. 길고 무덥던 여름을 우리와 함께 보내셨다. 가끔 아버지는 우리 네 남매를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 (산이라야 바로 집 문을 나서면 되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돌을 주어오게 하셨다.
"돌을 모아서 이곳에 쌓아두자. 이 돌들을 모아 우린 이 산에 멋진 성을 만들거야."
돌을 모아 쌓는 일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즐거운 놀이였다. 돌을 모아 쌓노라면 시간은 훌쩍 지나가곤 했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그 산기슭 집을 떠나 두 군데쯤 더 이사다니다가 작지만 아담하고 포근한 우리집을 마련해서 20여 년을 살았다. 아버지가 사셨다는 산도 어느틈엔가 다른 사람에게 팔려 아버지의 사업 빚을 갚는데 쓰여졌다.
그 여름에 그렇게 열중했던 돌 모으기는 어느 틈엔가 내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갔다.
더 세월이 흘러 자신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몇 배의 아픈 시간을 보내야 했던, 넘치는 재주와 시대를 앞서는 이상 때문에 또 몇 번의 성취와 좌절을 거듭해야 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뒤..... 나는 아버지 무덤가에서 그 여름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나는 돌을 날랐다.
돌이 차곡차곡 쌓여지며
돌탑이 되면
아버지는 나를 보고 웃으셨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 성의
한 귀퉁이가 될 거야.
여름 무더운 날 무료에 지칠
시간도 없이
나는 돌을 날랐다.
-덥니?
-아니오, 즐거워요.
하늘에는 흰 구름이 흘렀다.
구름이 아름다웠다.
돌을 나르며 나는
그 돌이 만들어낼
무수한 아름다움을 생각했다.
그 여름
아버지는 무더웠으리라.
그 분은 그때 실직자였다.
돌탑들은 우리가 살던
한적한 산 기슭의 집 근처에
무리지어 세워졌지만
끝내 성은 세워지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의 세 곱절이 넘게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돌을 모으며 성을 이야기하던
그의 슬픔을 이해했다.
내게는 고운 꿈이었던 여름날들.
무료함과 불안으로 보내던
그의 아픈 시간들.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돌탑이 어떻게 무너져 갔는가
기억조차 아득한데
내 안에 세워진
이 견고한 성
아버지,
나의 성을 이루는 돌들은
그때 당신과 함께 나른 돌들입니다.
밖에서 허물어진 돌들은
내 꿈으로 들어와 쌓여지고
부서지지 않는 성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아픔의 시간
찬란한 내 꿈의 하늘 되어
성을 굽어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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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딸의 결혼을 맞아, 딸을 향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담은 글을 어느 게시판에서 읽었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함께 쌓던 성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내가 열아홉일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나에게 남기신 글이 딱 하나 남아 있다. 내 앨범 속지에 써놓으신 글. 열세살 되는 내 모습이 기특하고 예쁘다고 쓰신.....
아... 그리운 아버지. 권진원의 노래가 서러운 눈물이 되어 흐른다.
<아버지 -권진원 노래>
아주 오랜 봄날 오후
흘러가는 강물결을 따라 아버지 날 태워주셨죠
자전거엔 노을과 나
아지랑이 들길에는
그날 같은 다정한 목소리 미소도 다 그대로인데
누워 계신 나의 아버지
아버지 누워 계신 동안에
함께 가꾼 꽃밭 채송화 피고
또지어 피고 또 지어 간 곳 없네
아버지 아버지 내게 다시 한번만 그날처럼 웃어 주시면
이렇게 서런 이렇게 서런 눈물 내게 없으리
저이거보고 울었습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