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명복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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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연기땜에 숨을 못쉬겠어.
헉 헉.

오빠 사랑해.” 18일 오전 10시 남편 김구한(31·사진)씨를 깨운 결혼 10개월된 ‘새댁’ 민심은(25)씨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밤새 가게에서 일 하고 돌아온 김씨가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인 후였다.

“ 어? 뭐라구?”하고 잠결에 답하는 순간 ‘뚜-뚜-’소리를 내며 끊어지는 아내의 휴대전화.

허둥지둥 아내의 핸드폰 번호를 눌렀 지만 아내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이날 아침 아내는 얼마 전부 터 배우기 시작한 네일아트 학원에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아내 의 전화 이후 미친듯이 아내를 찾아 헤맸지만 어디에도 그녀는 없었다.

어두운 지하철 안에서 공포에 떨고 있었을 아내, 죽어가 면서 휴대전화에 저장된 남편의 단축번호 1번만을 끊임없이 눌렀 을 아내를 생각하면 김씨의 가슴은 무너진다.

“마지막으로 사랑 한다는 말 한마디도 해주지 못했는데, 앞으로 둘이 정말 행복하 게 살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김씨는 아내의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며 울음을 삼켰다.

●…“오늘 저녁에 졸업선물 받으러 온다캤는데… 내 손녀를 누 가 데려갔노.” 외손녀 박혜영(13)양이 실종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김차연(63· 경북 영천시·사진)할머니는 넋이 나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 으면 어제 졸업식에 꼭 가봤을낀데, 몸 아프다는 핑계로 안가본 내가 벌을 받은기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외할머니는 꼭 와야된 다 캤는데….” 김 할머니는 사고 하루전인 지난 17일 박양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못가 “선물로 옷을 샀으니 받으러 오라”고 한 자신이 외손녀 를 죽게 했다고 몸부림쳤다.

김 할머니는 “혜영이는 몸이 안좋 은 나를 거의 매일 찾아와 걱정할 정도로 효심이 대단한 아이였 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김할머니는 “외손녀가 사라졌는데 내 몸 아픈 게 무슨 대수냐, 졸업식에도 못갔고, 오늘도 이렇게 늦었으니 혜영이가 얼마나 원 망했겠냐”며 가족들을 붙잡고 오열했다.

○"엄마! 사방이 불바다예요, 빨리 구해주세요".
"여보 숨이 막혀 죽을것 같아요, 애들이 보고 싶어요!"18일 오전 9시55분 전후 대구 지하철 방화 대참사 현장.

생사를 넘나드는 긴박한 순간, 사랑하는 남편과 엄마.아빠를 애타게 찾는 다급한 목소리가 휴대전화로 가족들에게 숨가쁘게 전달됐다.

희생자들은 휴대전화로 자신을 구해 달라거나 더 이상 보지 못할 것 같다는 애절한 이야기로 영원한 작별을 고해야 했다.

김모(39.대구 상인동)씨는 "사고시간 직후이던 오전 10시쯤 아내가 불이 났다.

빠져나가지 못하겠다.

빨리 와서 구해달라는 전화를 해 와 현장에 달려왔으나 아내가 행방불명"이라며 울부짖었다.

사고 현장을 찾은 박모(38.대구 율하동)씨는 "딸이 졸업선물을 사러 간 후 울면서 전화를 걸어 와 연기가 전동차 안에 가득합니다.

빨리 구해주세요.

엄마 못볼지도 몰라요…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이 끊겼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18일 오후 현장으로 달려온 박모(44)씨는 고3 딸로부터 "엄마 살려줘" 하는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딸이 시내에 있는 피아노학원에 간 뒤 연락이 없다는 것.

간신히 탈출했다는 김모(32)씨는 "불이 난 후 전동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했으나 안되자 거의가 휴대전화로 빨리 구해 달라고 비명을 질렀다"고 전했다.


◇안타까운 영안실○...7구의 시신이 안치된 파티마병원 장례식장에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유족들의 오열이 이어졌다.

그 중 6명의 사망자 유족들은 이날 빈소조차 마련치 못해 유족 대기실에서 슬픔을 달래야 했다.

이무순(54·여·대구 계산동)씨는 "9남매 중 넷째 오빠를 잃었다"며 "집을 사 내달 1일 이사한다며 큰오빠와 함께 부모님 산소에 간다고 지하철을 탔다가 변을 당했다"고 했다.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에서 갖고 나온 유류품 중에는 가방이 가장 많았다.

18일 오후 유류품 정리작업을 하던 소방본부 현장 상황실 부근에서는 도시락이 든 가방 등 10여점 가까운 가방이 목격됐다.

한 소방대원은 "가방 주인이 꼭 살아 있어야 이 가방을 돌려줄 수 있을 텐데..." 라며 생존을 기원했다.

사고직후 어머니에 전화, 절박한 도움 요청 (대구=연합뉴스) 정윤덕기자 = 200여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 과정에서 서울대학교 입학을 앞둔 여학생이 실종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더욱이 이 여학생은 참사 발생순간 휴대폰을 통해 어머니에게 절박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 부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대구시청 총무과 직원 이달식(45.남구 대명동)씨의 딸 현진(19)양은 참사가 발생한 18일 오전 서울대 사회과학대 입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함께 쇼핑을 하기 위해집을 나섰다.

현진양은 이날 오전 9시 50분께 친구와 헤어진 뒤 집으로 전화를 걸어 "대구역앞에서 지하철을 탄다"고 어머니에게 알렸으며 이것이 현진양이 가족들과 나눈 마지막 다정한 대화가 됐다.

현진양은 8분여 뒤 다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안돼 안돼..."라고 소리쳤으며 이에 어머니는 딸이 납치된 것으로 여기고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전화는 끊긴 뒤였다.

잠시 후 지하철 참사소식이 보도됐고 이에 딸이 참사에 휘말린 것을 직감한 현진양의 부모는 사고 환자들이 입원한 대구시내 8개 병원을 샅샅이 뒤졌으나 딸의 행방을 찾지는 못했다.

결국 현진양의 부모는 서울대 입학이라는 부푼 기대를 가슴에 안고 쇼핑에 나섰던 딸이 상행선 1080호 전동차의 객차 6량 중 하나에 탑승했다 화마에 휩싸였을 것으로 보고 딸의 시신만이라도 수습하기 위해 아직까지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수십명희생자 시신의 신원확인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달식씨는 "현진이가 1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부에 매달려 원하는 대학에 합격, 온가족이 기뻐했는데 입학을 눈앞에 두고 이런 일을 당하다니 어이가 없다"며 탄식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아빠,뜨거워 죽겠어요…
한 지체 장애인의 어이없는 방화가 수많은 가족의 단란했던 행복을 한 순간에 앗아갔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매캐한 유독가스에 가슴을 쥐어 뜯으며 숨졌을 피해자들의 싸늘한 시신 앞에서 유가족들은 통곡의 밤을 새웠다.

한 푼이라도 보태자며 학습지 교사로 맞벌이에 나선 주부 김인옥(30)씨는18일 오전 6살과 4살짜리 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남편 이홍원(35)씨에게 휴대폰을 걸었다.

“지금 지하철인데 거의사무실에 도착했어.저녁 밥 맛있게 준비해놓을 테니까 오늘 빨리 퇴근해.” 그 때만 해도 남편 이씨는 행복한 저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도 잠시였다.

부인 김씨로부터 피맺힌 절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싶어…”라는 김씨의 한마디는 부부가 이 세상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

남편 이씨는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으면 부츠 한 쪽이 벗겨져 있었다”면서 “불행은 왜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의 몫이냐”고 통곡했다.

이날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로 숨진 희생자 가운데 상당수는 전기 마저나간 어둠 속에서 유독 가스에 시달리는 극한 상황에서 휴대폰에 의지해필사의 구조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희생자들은 주부와 자영업자, 방학을 맞은 대학생 등 평범한 소시민이 대부분이어서 유가족들의 슬픔을 더했다.

○10살과 6살 된 두 딸을 둔 허은영(37ㆍ여ㆍ경북 김천시 신음동)씨는 남편차한우(42ㆍ김천지청 직원)씨가 장남이라 “아들 하나를 낳아야 겠다”며대구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다 변을 당했다.

친정 어머니 이모(59)씨는 “시부모와 친정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착한 며느리이자 훌륭한 딸이었는데…”라며 경북대 병원에 안치된 딸의시신을 안고 통곡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에 후송됐다 숨진 김모(52ㆍ여)씨는 머리가 불에 약간그을린 정도의 상처 밖에 없었지만 손톱이 다 빠져있어 유독가스와 불길을뚫고 탈출하려던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이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안선희(20ㆍ여)씨의 아버지 안상선(55)씨는 오후 늦게서야 딸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곤 한때 졸도했다.

안씨는 “며칠 전 취직을 해서 첫 출근을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어떻게이런 일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안씨는 “기관사가 출입문만 열어줬어도 상당수는 살 수 있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날 병원과 현장 주변에선 밤새도록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대구시청 총무과 직원 이달식(45)씨의 딸 현진(19)양은 서울대 사회과학대에 합격한 뒤 입학을 앞두고 친구들과 쇼핑을 하러 나갔다 소식이 끊겼다.

딸 미희(21)씨로부터 “아빠, 뜨거워 죽겠어요”라는 긴박한 휴대폰을 받은 정인호(51ㆍ대구 동구 방촌동)씨도 밤새 딸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해 발을 굴렀다.

박남희(44ㆍ여)씨는 피아노학원을 간다며 나간 고3 딸로부터 “엄마 살려줘”라는 휴대폰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으나 소식이 두절된 상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조효정(12)양은 친구와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탄 뒤친구에게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지하철사고가 나 약속시간을 못 맞출 것같다”고 전한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동차에서 탈출한 정영섭씨(43·자영업·대구시 북구 산격동)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차량 내 방송이 나온 지 2∼3분 만에 객차 문이 열리면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연기가 밀려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가 끊겨 사방이 암흑에 휩싸인 가운데 가까스로 출구를 찾았다며 "사방이 캄캄한 가운데서도 쓰러진 사람을 부축해 가며 위쪽으로, 위쪽으로 기어올라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검찰 공무원인 남편의 직장을 따라 최근 김천으로 이사한 허은영씨(37·여·경북 김천시)는 장남인 남편과의 사이에 딸만 둘을 두자 아들을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이날 오전 대구에 있는 모 산부인과에 예약을 하고 열차편으로 대구역에 도착, 곧바로 지하철을 탔다가 변을 당했다.

모 식품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함께 근근이 생계를 꾸려온 김인옥씨(30·여·대구시)는 아이들을 유치원에 맡겨두고 직장에 출근하다 사고를 입었다.

경북 영천에서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김씨의 시아버지는 "평소 시부모에게 그렇게도 극진했는데"라며 오열을 터뜨렸다.

 ○…정인호씨(51·대구시 동구 방촌동)는 오전 10시께 딸 미희씨(21)에게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 못 나간다"는 전화가 온 이후 연락이 두절됐다.

정씨는 "딸이 대학편입을 위해 시내에 있는 영어학원을 다녔는데, 사고 지하철에 탄 것 같다"며 오열했다.

같은 시각 박남희씨(44·대구시)도 고3 딸로부터 "엄마, 살려줘"라는 딸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무작정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구내에 방화 용의자 김모씨(56)가 불을 지르는 순간 주변에 있던 승객들과 격투를 벌였으나 이를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승객 박금태씨(37·남구 대명동)는 "김씨가 검은 가방에서 기름통을 꺼내 라이터로 불을 붙였고, 주변 사람들이 기름통을 빼앗기 위해 격투를 벌이던 중 기름통을 집어던져 불길이 번졌다"고 말했다.

 ○…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현장 지휘본부는 사고 지하철에 탑승한 인원이 화재가 발생한 하행선 1079호 전동차에 250여명, 반대편의 상행선 1080호에 180여명 등 모두 430여명일 것으로 추정했다.

한 지체 장애인의 어이없는 방화는 수많은 가족의 단란했던 행복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칠흑 같은 암흑속에서 매케한 유독가스에 가슴을 쥐어뜯으며 숨졌을 피해자들의 싸늘한 시신 앞에서 유가족들은 통곡의 밤을 새웠다.


한 푼이라도 보태자며 1년 전부터 학습지 교사로 맞벌이에 나선 주부김인옥(30)씨.

6살과 4살짜리 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지하철로출근하면서 남편 이홍원(35)씨에게 휴대폰을 걸었다.

“지금 지하철인데거의 사무실에 도착했어.

저녁 밥 맛있게 준비해놓을 테니까 오늘 빨리 퇴근해.” 그 때만 해도 남편 이씨는 행복한 저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의 순간도 잠시였다.

부인 김씨로부터 피맺힌 절규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여보! 불이 났는데 문이 안 열려요.

숨을 못 쉬겠어요.

살려주세요, 살려줘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여보 사랑해요.

애들 보고싶어…”라는 김씨의한 마디는 부부가 이 세상에서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고 말았다.

남편 이씨는 “살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으면 부츠 한 쪽이 벗겨져 있었다”면서“불행은 왜 열심히 사는 사람들만의 몫이냐”고 통곡했다.


18일 지하철 방화 참사가 발생한 대구 중구 남일동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구내 사고 전동차안에 있던 희생자들중 상당수가 전기 마저 나간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유독가스에 가슴을 쥐어 뜯고,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비명소리를 들으며 휴대폰으로 ‘살려달라’는 구조요청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특히 희생자들은 가족을 출근시키고 볼 일을 보러 나가던 주부와 자영업자, 방학을 맞은 대학생 등 평범한 소시민들이 대부분이어서 유가족들의 슴픔이 더했다.

10살과 6살된 두 딸을 둔 허은영(37ㆍ여ㆍ경북 김천시 신음동)씨는 남편차한우(42ㆍ김천지청 직원)씨가 장남이라 “아들 하나를 낳아야 겠다”며대구에 있는 산부인과를 찾아가다 변을 당했다.


친정 어머니 이모(59)씨는 “살림도 잘하고 시부모와 친정 부모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착한며느리이자 훌륭한 딸이었는데…”라며 경북대 병원에 안치된 딸의 시신을안고 통곡했다.


동구 율하동에서 딸을 찾아 나섰다는 김모씨도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이 친구 생일이라고 선물을 사러간다며 집을 나섰는데 아직 생사를 알지 못하고 있다”며 “집으로 전화가 와서 ‘연기가 많고 문이 안 열린다’고 했는데 변을 당한 것 같다”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김씨는 “기관사가 출입문만 열어 줬어도 내 딸은 살아났을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에 후송됐다 숨진 김모(52ㆍ여)씨는 머리가 불에 약간그을린 정도의 상처 밖에 없었지만 손톱이 다 빠져있어 유독가스와 불길을뚫고 탈출하려던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케 했다.

특히 상당수 희생자들은 전동차 내부 출입문 쪽에 엉켜있는 상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이들이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리고 않고 필사적으로 문을 열려다 숨진것으로 추정됐다.


이날 병원과 현장 주변에서는 가족을 찾아 나선 시민들의 안타까운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이날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안선희(20ㆍ여)씨의 아버지 안상선(55)씨는 사고 발생 후 수백통도 넘게 휴대폰을 걸었다가 오후늦게서야 딸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곤 졸도하고 말았다.


응급조치를 받고 깨어난 안씨는 “며칠 전 옷가게 점원으로 취직해 며칠 있으면 첫 출근을 한다며 그렇게 기뻐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기 마저 나가 눈에는 칠흙 같은 어둠만이, 코와 입으로는 유독가스가,귓가에는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명과 ‘출구가 없다’는 다급한 외침만이 들려오는 아수라장이었다.
18일 오전 대구 중구 남일동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방화 참사로 희생된이들은 가족들을 출근시키고 볼일을 보러 나가던 주부와 자영업자, 친구선물을 사러나가던 학생 등 평범한 소시민들이 대부분이어서 주위의 안타까움을 더했다.

대구 달서구 대곡동 주부 김모(57)는 이날 오전 10시께 다급하게 울리는전화기를 받아들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구 반월당에 있는 단과 입시학원에 간다며 30분전에 나간 고등학생 딸의 “엄마 불이 났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요”라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전화를 타고 들려왔기 때문이다.

“여기 중앙로역이에요…”라는 말을 끝으로 이내 끊겨져버린 전화를 던지다시피 하고 중앙로역으로 달려나온 김씨의 눈앞에는 시커먼 유독가스를내뿜는 지하철 역사와 119구조대원에게 실려 나오는 사상자들이었다.

딸을찾아 시내 병원을 뛰어다니던 김씨는 “딸이 무사하다면 분명히 전화를 했을텐데, 지금까지 소식이 없다”며 울부짖었다.

이날 현장주변에는 가족을 찾아나선 시민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끊이지않고 이어졌다.

이날 참사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안모(21ㆍ여)씨의 아버지는 사고 발생 몇시간 뒤 황급히 병원을 찾아 “며칠전 회사에 취직해 며칠 있으면 첫 출근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렇게 기뻐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느냐”며 통곡했다.

동구 율하동에서 딸을 찾아 나섰다는 김모씨도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이 친구 생일이라고 선물을 사러가겠다고 해서 나섰는데 아직 소식이없다”며 “집으로 전화와서 ‘연기가 많고 문이 안 열린다’고 했다”며어쩔 줄 몰라 했다.

피해자들은 이 같은 정황을 근거로 “당초 불이 난 불이 난 객차는 문을열어둬 객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불길을 피해 곧바로 대피했지만 뒤늦게도착한 옆 객차는 문을 닫아둬 피해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이 전동차에 타고 있던 이창훈(27ㆍ대학생)씨는 “여학생들이 곳곳에서‘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쳐 생지옥이었다”며 “중앙로역 도착직후는 연기가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을 계속 열어뒀더라면 승객들이 모두 대피할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영아야, 정신 차려야 돼."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영아, 영아, 영아…."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 봐." "엄마 사랑해…." 18일 오전 사고 현장을 헤매고 다니던 장계순(44)씨와 딸 이선영(20.영진전문대)씨의 마지막 휴대전화 통화 내용이다.

학교에 간다면서 집을 나갔던 李양이 어머니 장씨에게 처음 전화를 한 것은 이날 오전 10시쯤.

처음에 장씨는 명랑한 성격의 딸애가 장난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울먹이는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고 했다.

장씨는 수시로 끊어지는 딸의 휴대전화에 10번 넘게 전화를 걸어 힘을 북돋워 주려 했으나 "엄마 사랑해"라는 마지막 인사말을 듣고는 집을 뛰쳐나와 현장으로 향했다.

사고 현장 주변에서 장씨는 만나는 사람을 붙들고 "사고난 지 3시간이 지났으니 가망이 없겠지요""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는 말을 되뇌어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지하철 화재 사건의 희생자들이 가족 등과 휴대전화로 나눈 대화내용은 애절함으로 가득했다.

2년여 전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발생한 9.11테러 당시 희생자들이 가족 등과 나눴던 애틋한 대화가 재연된 것이다.

지하철 탑승자들은 수십m 지하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화마(火魔)와 연기가 덮쳐오는 상황에서 "사랑해""미안해" 등의 작별인사를 지상의 가족 등에게 남겼다.

아직도 마지막 인사가 귓가에 쟁쟁한 희생자 가족들은 사상자들이 옮겨진 병원 영안실 등에서 혹시나하는 생각에 찾는 이의 휴대전화 번호를 습관처럼 되누르곤 했다.

이 때문에 이날 사고 현장 주변은 통화 폭주로 휴대전화가 연결되지 않거나 자주 끊어졌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초로의 한 부부는 사고 현장 부근인 대구은행 현관에 주저앉아 "막내아들이 불효 자식을 용서해 주세요라고 휴대전화를 걸어왔다"며 부둥켜안고 울고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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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까페 운영자 용서못해요!!!
뭐???축하합나고????
x나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