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고 쳤지만 생각엔 변함없다"
[오마이뉴스 2005-02-11 14:07]
[오마이뉴스 조성일/권우성 기자]
▲ 최근 <맞아 죽을 각오로 쓴 친일선언>을 출간한 가수 조영남씨에 대한 인터뷰가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진행됐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나는 친일파다!"
누가 듣더라도 귀가 번쩍 뜨이는 이 발칙한(?) 언사가 가수 조영남(60)씨의 입에서 나왔다. 그것도 책을 통한 공개 선언이다. 그동안 그가 신문 칼럼이나 방송에서 간헐적으로 이같은 뜻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책 <맞아 죽을 각오로 쓴 100년만의 친일 선언>(랜덤하우스중앙)을 통해 그 발언 수위를 높였다.
그의 이같은 행동을 두고 시중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한편에서는 쌍시옷이 들어간 육두문자로 공격을 해대고, 또 한편에서는 공감이 간다는 표정이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뜨겁게 달구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한,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예민한 부분 중 하나인 '민족적 정서'를 거스러가면서 그는 왜 '친일 선언'을 했을까?
서울 청담동 집에서 그를 만나 속얘기를 들어봤다.
"읽지도 않고 제목만 보고 비난하더라"
"책을 읽지 않고 제목만 보고 무조건 거부하는 것에 대응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비난이 쏟아질 땐 정말 곤혹스러웠다. 사실 나는 친일 선언을 통해 뭔가 이익을 얻었다는 소릴 듣기 싫어서 조용히 가길 원했다."
조영남씨는 자신의 친일 선언이 몰고온 파장이 애초 예상과는 달리 엉뚱하게 흘러간다고 했다. 그렇다고 차분하게 한일관계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지도 않은 상태에서 비판이 아닌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일본에 대한 우리의 민족 감정이 어떠한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했다.
1999년에 나온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김경일 지음/바다출판사 펴냄)도 책제목만 보고 흥분한 유림들이 매우 강하게 항의했던 전례가 있었다는 얘기를 해주자 그는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몰역사적인 인간이라고 비난하더라. 나를 역사적 안목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해줘서 한편으로는 고맙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운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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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책을 쓰고 나서 비로소 한국 근대사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게 이번 일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입에서 갑신정변·갑오경장·을미사변·대원군·고종·명성황후·일본·청국·러시아… 같은 한국 근대사를 이루는 중요한 열쇳말들이 줄줄이 나왔다. 거실 탁자 위에는 몇 권의 한국 근대사 책들이 놓여 있었다.
한국 근대사에 대해 차분하게 살펴보고 난 후 그는 자신이 이번에 "사고를 쳐도 대단히 큰 사고"를 친 것 같다고 했다.
"아마 근대사 공부를 하고 썼으면 이렇게 못썼을 것이다. 일반 가수로서 일본을 잠시 보고온 느낌만 얘기한다는 입장에서 썼기에 책은 제법 재미있게 됐다. 역사적인 측면을 알고나서는, 내가 얘기한 게 정말 무시무시한 한국 근대사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느꼈다. 그러면서 개혁파나 새로운 생각을 제시하는 사람은 반드시 실패하고 고난을 겪는다는 철칙도 배웠다."
그의 말은 사실 무식했기에 글을 용감하게 썼다는 것일 터. 유식(?)해지고 난 지금은 어떨까?
"생각이 바뀐 것은 없다. 사실 책제목에 '친일'이란 단어를 써서 그렇지 책을 읽어보면 일본을 알고 일본을 이용하자는 게 내 주장이다. 과거의 일이 일어난지도 100년이나 지났고, 그 관계가 끝난지도 60년이 지났고, 또 사귀자고 한지도 40년이 넘었다. 그런데 그동안 단 한명도 일본 친구 노릇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다는 게 대중가수인 내가 보기에도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라도 해야겠다, 해서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은 헛소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최악의 경우 "그래 조영남이 또 헛소리를 했다" 하고 빠져나갈 돌파구는 있다고 생각했단다.
백번을 양보해서 그의 생각이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사전에 해야할 일이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가령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와 같은.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건 정치적인 문제고, 나는 대중가수기에 대중가수 입장에서 말한 것이다. <겨울연가>나 보아나 다 일본에 수출해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런데 후배 연예인들이 일본 무대에서 우리는 친구라고 자신 있게 인사하지 못하는 현실을 보라. 우리가 좀생이 같지 않나. 그래서 나라도 총대를 메야겠다 하는 생각에서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꼭 그런 것들이 선행되어야 한다면 겉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는 소니 텔레비전, 코끼리 밥솥, 렉서스 같은 갖가지 일본제 제품들을 버리는 국민운동부터 벌이는 것이 순서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일본제품을 버젓이 쓰면서 그렇게 요구하는 우리의 이중적 모습은 분명 모순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가 지일파, 친일파 자처하게 된 이유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잘 알려진대로 조영남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과 함께 텔레비전 중계를 보면서 진정으로 한국을 응원하는 일본인들을 보고 감격하여서 지일파로, 한국에서는 단 한차례 박수를 받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여 무려 18번에 걸쳐 박수를 받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서 친일파가 됐다.
그런데 그가 지일파와 친일파가 되었다는 설명치고는 어딘지 모르게 함량미달 같아서 다른 이유가 더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대답은 단칼이다.
"나는 대중가수다. 이를 테면 팝아티스트이다. 그게 사회인류학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난 그냥 큰 충격을 받았다. 단순하다. 논리로 따지자면 유치하다. 그러나 내 가슴을 친 것은 강력했다."
그는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 초청으로 2004년 7박8일간 일본을 갔다와서 이 책을 썼다. 그는 당시 일본에 갈 때 꼭 보고 싶은 곳이 두군데 있었다. 하나는 야스쿠니 신사였고, 또하나는 포르노 촬영현장, 그것도 여고생 포르노 촬영현장이었다. 이 두가지가 일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야스쿠니 신사는 공식적인 일정 속에 넣어 가보았는데, 고이즈미 총리가 참배할 때 사용하는 길을 따라가보기 위해 총리 공관에서부터 시작하여 야스쿠니 신사를 구경했다고 한다. 야스쿠니 신사는 앞뒤 두 채의 평범한 절처럼 보일 뿐이었다고.
그런데 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한·중·일 동양 3국이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일본에게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그는 설명한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이 한수 위다. 앙앙불락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하면 할수록, 일본의 위상은 상승 무드를 탄다.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야스쿠니 신사는 어느새 국제적인 일본 관광명소가 돼 있지 않느냐. 결국 농락당한 것이다."
그럼 그같은 일본의 행동을 보고 가만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 그들도 변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그동안 우리는 일본에다 대고 지속적으로 바뀌라고 요구해왔지만 정작 우리들 자신에게 바뀌어보자고는 하지 않았다며, 그래서 이번에 사고를 쳤다고 했다.
그가 가보고 싶었던 또 한 곳, 여고생 포르노 촬영 현장에서, '욕망'에 솔직하다는 평을 받고있는 조영남도 초청자의 체면 때문에 차마 공식적인 일정을 잡아달라고 하지 못해 혼자 공부(?)를 했는데, 그곳에서 그는 대단한 일본의 힘을 발견했다고 했다.
"놀라웠다. 포르노를 찍는 사람들이 수치심이나 죄의식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일본의 어떤 분야를 보든 끝까지 가는 돌격정신이 있다. 우동집이나 라면집도 마찬가지다.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는 저들을 누가 이길까 하는 공포심이 막 밀려오더라."
그렇지만 그가 58년 동안 좋아했던 미국에 비해 일본은 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청교도와 구질구질한 종교가 공존한다. 미국은 깨끗함과 더러움이 함께 있으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데 비해, 일본은 아름다운 쪽으로만 강조하여 일사분란함 같은 것이 강조된다. 다시 말해 생산된 아름다움이어서 심심한 나라다."
"어릴 적 쳐다도 못보게 했던 사쿠라꽃, 지금은 구경가자고 난리 아닌가"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조영남은 얽히고설킨 과거 문제를 전제로 하면 한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과거 문제를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 역시 중요하니까 과거 문제대로 해결점을 찾고, 미래에 대한 관계 설정은 그 나름대로 새롭게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
"보라. 내가 20년 전에 화투를 그렸는데, 온갖 비난을 다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림을 사간다. 그리고 우리들이 화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생각해보라. 상가에서 3박4일 동안 치지 않나. 벚꽃도 그렇다. 내가 어렸을 적엔 사쿠라꽃이라고 쳐다보지도 못하게 했는데, 지금은 구경하러 가자고 난리치지 않는가?"
이번에는 그에게 한·일 간에 응어리진 민족 감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 이런 대답을 내놨다.
"이 문제는 내 딸에게 '너의 아버지 조영남이 일제 치하에서 살지는 않았다. 그런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니 너는 일본이 우리를 괴롭혔던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할 거냐 말 거냐의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내 부모가 내게 하지 않았듯 나 역시 일부러 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통해 스스로 알고 그에 따른 생각을 하는 것은 별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과거사청산 문제에 대한 입장도 물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북한에다 전화를 해서 함께 해결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그래야 저쪽에서 보기도 좋고 또 격도 있고, 과거청산은 하나된 조국에서 해야 한다. 한쪽만 해봐야 그건 반쪽에 불과하다."
그는 이제부터 평생 민족주의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헛소리(?)처럼 내뱉은 '친일선언' 때문이다. 언젠가 헛소리 때문에 벼락을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바로 그 벼락을 맞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언제부터 내 말이 농담으로 안 받아들여지고 진실로 통하게 됐는지 나도 궁금하다. 이 일로 그동안 내가 불쑥 말을 내뱉는 버릇에 대해 반성할 여지도 있고, 또 대견스럽기도 하고 …. 봐라. 내가 언제 이런 자세를 기자 앞에서 취한 적이 있나. 이런 톤으로 얘기한 적이 있나. 이젠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일·극일하자는 게 본심이다"
ⓒ2005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면서 그는 한 가지 희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책을 읽어보면 독자들이 내 본심을 면밀히 이해할 것이다. 그걸 믿고 이젠 긴장을 풀어도 될 것 같은데, 워낙 거부반응이 강하니까. 내가 하려고 했던 말의 의미는 일본을 알고 일본 이겨내자는 뜻이다."
그는 이 책이 이케하라 마모루의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의 변종이 아니냐고 묻자, 솔직하게 그렇다고 답한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그 책에 대한 응답쯤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욘사마와 보아에 대해 누군가가 해야할 감사의 말을 생색내기 차원에서 한 것으로 봐달라고 했다.
"교묘하게 일본이 우리를 탐냈건 어쨌건 가까이 지내야 된다는 절박한 생각이 든다. 욘사마나 보아나 모두 뜻한 건 아닐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일본이 우리를 침공하기 위한 미끼상품 같은 생각이 든다. 이건 고차원의 문제다. 따라서 우리도 한 수 높여 '그래 친구하자' 하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게 극일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그렇게 대응하자는 것이다."
그는 이어령의 '축소지향의 일본'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일본의 확대지향이 부럽다. 일본에는 서양에 없는 것이 있다. 또 서양이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축소지향도 확대지향도 없었다. 일본은 예술이나 문화, 경제가 확대지향적으로 세계에 뻗어나간다. 백인보다 우월하다는 잠재된 정신이 있다. 그들이 세계 최초 항공모함 만든 것에 대해 만들면 안된다고 하기보다는 만드는 기술을 배워 우리도 만들어 그들과 대등해져야 한다."
그에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부탁했다.
"앞선 대통령들이 구식 이미지였다면 노 대통령은 새로운 시대의 대통령 샘플이 시작된다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한편 개혁을 심하게 하니까 잘될까 하는 점이 솔직히 걱정이 된다. 다만 개혁하는 사람들은 다 선의로 한다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오마이뉴스>도 상당히 개혁적인데 조심해야 할 것이다."
조영남씨에 대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그의 개인적 이야기에서부터 공적인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는 이번에 낸 책을 주제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아쉬움을 뒤로 하면서.
/조성일/권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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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조국 버리는 님하는 죽어야됨.
그래, 존내 맞는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