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저에게 무언가를 질문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제 홈페이지 컨텐츠에 관련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하오체'였습니다.

보아하니 고등학생인 모양인데, 제 홈페이지에 들어와서, 자기가 질문을 하면 제가 답을 해줄 수 있겠다는 것을 알았다면 제가 적어도 자기보다 나이가 한참 많다는 것 역시 알았을 것입니다. 화도 나고 어이도 없어서 담배 한 대 피운 다음에 어떻게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했습니다.
답글을 썼습니다. "답변하는 것은 문제도 아닌데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가르쳐 주었으면 고맙겠다. 학교와 학년을 말해주면 친절히 답을 해주겠다." 이런 내용으로 써서 보냈습니다. 만일 답장이 오면 저는 그 학교의 국어 선생님에게 정식으로 항의를 할 것입니다. 그것도 자존심이 몹시 상하도록 써서 보낼 것입니다. 그 학생은 이제 큰일 난 것입니다.

이 글은 거사를 앞두고 몸풀기 차원에서 써보는 것입니다.
제가 아직도 심사가 편하지 못하여 글의 투가 좀 엇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점 미리 사과를 드리면서 본론, 즉 '하오체'가 대체 왜 문제인지 등등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엔지오에서 하오체에 대한 글을 세번째로 쓰는 듯 합니다. 네번째던가요? 아무튼 먼저는 너무 어렵거나 간단히 쓴 것 같아서 이번에는 아주 쉽고 시시콜콜하게 써보려고 합니다. 이 게시판이 이 용도에 안성맞춤으로 딱 들어맞습니다.

우리말에는 존대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거 제대로 모르면 어디가서 사람대접 못받습니다.
뿐만아니라 부모님까지 욕을 드시게 되고 잘못하면 한 대 맞습니다.
그럼 존대는 어떤 사람에게 하는 것일까요? 자기의 윗어른이나 연장자에게는 물론이고 나이 어린 사람이나 아랫사람에게도 그쪽에서 말을 낮추라고 하기 전까지는 존대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예의바른 사람이라는 소리 듣습니다.


예의의 기본은 무엇일까요.  쉽습니다. 남을 높이고 자기를 낮추는 것이지요. 존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우리 존대법의 기본입니다.

일반적인 존대는 '합쇼체'입니다. 제가 지금 이 글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주높임'이라고도 하며, 'ㅂ니다. ㅂ니까?' 등 '합쇼체의 종결어미'가 뒤에 붙는 것입니다.

그럼 문제의 하오체는 무엇일까요. 보통 '예사높임'이라고 합니다. 높임말 맞습니다. 존대말 맞습니다. 그런데 왜 저는 그 고등학생을 궁지에 빠뜨리려고 모략을 짜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사'높임말이기 때문입니다. 높임말은 맞는데 자기보다 아랫사람이나 대등한 사이에서 쓰는 높임말이기 때문입니다.

아랫사람에게 쓰는 평대에는 '해라체'와 '하게체'가 있습니다. '아주낮춤'과 '예사낮춤'이라고도 합니다. 현재 실생활에서 흔히 쓰는 평대가 '해라'입니다.'하게'는 그럼 어떤 경우에 쓸까요? '해라'를 하기에는 좀 상대방이 어려운 경우에 씁니다. 장인이 사위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나이 차이가 얼마 안나는 아래 항렬의 친척에게, 동년배지만 그다지 가깝지 않은 친구에게, 또는 가까운 사이지만 피차 예의를 갖추고 싶은 친구에게(어르신들 중에 친구끼리 '하게'하는 경우는 요즘도 많습니다), 남들 앞에서 격식을 차리고 싶은 경우 등등입니다. 정리하면 '하게'는 '해라'보다 상대를 대우하는 말입니다.

그럼 '하오'는 어떤 경우에 쓰는 것일까요? 우선 신분사회였던 과거를 예부터 들어보겠습니다. 당시는 요즘과는 달리 아랫사람(신분상)에게는 동의 없이 평대를 해도 한 대 맞을 걱정이 없던 시절임을 염두에 두시고요.임금이 신하에게, 당상관이 당하관에게, 동학(같은 스승에게 배우는 처지)
중 선배가 후배에게, 비슷한 관직에 있는 사람인데 피차 '하게'하기에는 어려운 경우, 항렬이 아래인 친척이지만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경우, 그리고 아랫사람이지만 그의 인격을 보아 함부로 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 등입니다.

요즘에는 그다지 쓸 일이 없어 보이지요. 그래서 한동안 '하오체'는 사극에서나 들어볼 수 있는 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사실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바로 '하오'는 평대를 해도 무방한데 상대를 대접해주는 것이 좋은 경우에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높임말인 것이지요. 단 절대로 윗사람이나 연장자에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이 예의라고 했는데, '하오'에는 상대가 나보다 아래라는 것을 깔고 시작하는 것이니 당연하고도 당연한 사실 아니겠습니까? 더러 친한 사이에서는 '하오'를 써도 된다는 말들을 합니다. 엄밀히 생각하면 이것도 틀린 말입니다. 친한 사이에 격식을 갖추고 싶거나, 또는 예스러운 말로 놀고 싶다면 '하게'를 쓰는 것이 법도에 맞습니다. '하오'에는 상대를 대접하는만큼 또 그만큼의 거리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대체 우리 조상들은 왜 이리 복잡하게 존대말을 구분해서 썼을까요? '합쇼'와 '해라' 둘만으로  충분한데 말입니다. 조금 양보하여 '하게'도 넣어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오'는 왜 써야만 했던 것일까요?

저는 여기서 우리 조상들의 품위를 발견했습니다. 좀 과장하자면 인간 존중의 정신을 발견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비록 신분 사회였지만 아랫 사람을 대접하고 그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서 '하오'라는 기막힌 언어가 필요했던 것이지요. 아무에게나 '하오'를 써주는 것이 아닙니다.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아랫사람에게 썼던 것입니다. 아랫사람의 인격, 학문, 품성, 지위, 나이 등등을 고려하여 내가 윗사람이지만 그에게 걸맞는 대우를 해야만 하겠다는 판단을 했을 경우 바로 '하오'를 했던 것 입니다.

과문한 탓으로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세상의 수많은 언어 중 이러한 기품과 정신을 가진 언어는 우리말이 유일할 듯 합니다.

제목을 보고 "이 양반 '하오체'에 원한이 많군"이라고 생각하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하오체'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우리의 '선비 정신'이 깃든 멋진 언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만 그릇되게 사용되고, 그것이 그릇된 것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만가는 것이 안타깝고 원통할 따름입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오'를 들으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격을 스스로 낮추는 것임을 모르고 시시덕거리는 것이 한심하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하오'를 하면서 그것이 자신을 높이는 방자함이자 무례함인줄 모르고 멋스러움으로 곡해하는 것이 또 한심할 뿐입니다.

모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하오체'를 그들만의 문화이니 이해하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 말에 반대합니다. 막을 방법도 모르고 능력도 없기에 그저 그렇게 잘못 사용되는 곳에는 가지 않고 듣지도 보지도 않을 뿐이지요. 그 살벌한 언어 폭력을 견딜 자신도 없고, 도무지 용기를 낼 수 없어서 그저 눈막고 귀막고 지낼 뿐입니다. 그저 누가 제게 그 말을 쓰지 않으면 된다고 여기고, 조금 더 바라자면 이곳에서는 되도록이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입니다.

모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하오체'를 그들만의 문화이니 이해하자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이 말에 반대합니다. 막을 방법도 모르고 능력도 없기에 그저 그렇게 잘못 사용되는 곳에는 가지 않고 듣지도 보지도 않을 뿐이지요. 그 살벌한 언어 폭력을 견딜 자신도 없고, 도무지 용기를 낼 수 없어서 그저 눈 막고 귀 막고 지낼 뿐입니다. 그저 누가 제게 그 말을 쓰지 않으면 된다고 여기고, 조금 더 바라자면 이곳에서는 되도록이면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입니다.

언어는 변화합니다. '하오체'의 용도도 변화하는 것이니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글쎄요. 변화는 좋지만 이왕이면 좋은 것은 살리면서,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하오체'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공부삼아서 '하오체의 종결어미'에는 뭐뭐가 있는지 대략 살펴 보겠습니다. '오, 소'가 기본임은 다들 아시지요. 'ㅂ디까'도 있습니다. 의문형이지요. 'ㅂ시다' 'ㅂ디 다' 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이 둘은 가끔 씁니다. 물론 해도 그다지 흉이 되지 않는 경우에 한 합니다만. 잘 안쓰이는 것으로 'ㅂ늰다' 'ㅂ딘다'도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들 쓰는 것으로 '는구려'와 '그려'가 있습니다. 이 둘은 앞의 것은 감탄형 어미이고 뒤는 '하게'나 '하오'의 종결어미에 붙는 조동사로 역시 감탄의 뜻을 나타냅니다. 요건 예를 들어볼까요. '오늘따라 예뻐보이는구려'가 앞의 예고, '오늘따라 예뻐보이네그려'가 뒤의 예입니다.

이건 하오체가 아닌 것으로 알고 흔히 사용하는데 아셨으면 되도록 서너살이라도 연장자나 불특정다수에게는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노파심으로 불특정다수에게는 왜 쓰면 안되는지, 즉 게시판에서 함부로 쓰면 어째서 버르장머리없는 사람으로 보이게 되는지 덧붙입니다. 게시판이란 누가 그 글을 읽을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오늘 참 날씨 좋습니다그려'라고 쓴 코멘트를 자기 아버지가 지금 보고 계실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끝으로 이 긴 글을 여기까지 참고 읽으신 중고등학교 학생 여러분들께 한가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국어 시간에 '하오체'에 대하여 배우는 것은 분명할 듯 한데 대체 어떻게 배웠습니까?
그저 "높임말에는 합쇼체와 하오체가 있다. 합쇼체는 '아주높임말'이고 하오체는 '예사높임말'이니 그렇게 알고 암기하도록..." 이렇게 배웁니까? 그렇다면 정말 커다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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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 12시 30분 경에 추가합니다. 중간에 코멘트로 달았던 부분인데, 워낙 많은 의견들을 주시는 덕분에 글이 길어져서 놓치고 지나가신 분들이 간혹 계신 모양입니다. 그리고 저 대신에 제가 해야할 답변이나 변명 등을 해주시는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쓰게 된 사건의 경과도 말씀드려야 할 듯 합니다.
제 계략에 말려서 의도대로 학교와 학년, 반까지 밝힌 메일이 왔습니다. 우선 약속했던대로 먼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이 문제인데, 계획대로 밀고나가는 것은 좀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처럼 한 밤 자고나니 화가 좀 풀렸기 때문인가봅니다. 그리고 그 학교 선생님께도 실례가 되는 일이 분명하지요. 그래서 제 계획을 이야기해주고 취소한 이유도 말해주고 이 글도 첨부해주었습니다.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 문제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도 문제고, 알려줘도 듣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르고 실수하는 것은 고치면 되는 것이겠지요.



내용출처 : [인터넷] http://www.nzeo.com/bbs/zboard.php?id=content_korean&page=1&sn1=&divpage=1&sn=off&ss=on&sc=off&keyword=하오체&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82

2차 출처
네이버 오픈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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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밖에 안나오네요.
햏자 즐

왜 무례한지가 잘 써있는 글
뭣보다 혼이 담겨있잖아 혼이
(...)

P.S. 네이버에 실린 게 몇몇 글이 격한 부분이 감히 짤려있어서
글쓴이의 열혈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멋대로 붙여넣기.

P.S.2 그 뒷이야기(...)

'하오체 유감'이라는 글을 올린지 벌써 달수로는 한달이 지났습니다. 날수로는 나흘이 되었군요. 추천 게시물이라는 광영을 입은 덕으로 조회수가 네자리에 코멘트 숫자도 백을 넘었습니다.
인터넷에서 글을 쓴다는 행위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의 공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저에게는 대단히 기쁜 일입니다. 좋은 의견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물론 공감하여 주신 분들께도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모든 의견에 코멘트를 다는 것이 글쓴자의 도리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그리하지 못한 것을 아울러 사과드립니다.

각설하고, 여러분들의 코멘트를 읽으면서 느낀점 두어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말 바로쓰기라는 이 게시판의 취지와는 약간 벗어난 것인지도 모르겠으나, 다른 마땅한 수단을 찾지 못했기에 관리자이신 이다님을 비롯하여 회원 여러분께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첫번째 느낌은 우리말의 바른 사용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계신 분들이 참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우리말의 그릇된 사용에 대해 걱정과 염려를 갖고 계신 분들이 많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반가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잘못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반증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하오체는 국적불명의 외계어나 지나치게 축약되고 변형된 채팅 용어에 비해서는 해악이 많이 덜한 편이지요.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우리말을 파괴하는 것은 아니니까 말입니다.
아무튼 바른 우리말 사용에 의식있는 분들이 앞장서고 솔선수범하여 작게는 이곳 엔지오 커뮤니티, 크게는 모든 인터넷의 게시판과 채팅방에서 아름답고 품위있는 우리말이 써지고 읽혀지기를 고대해봅니다.

두번째는 글을 대략 읽어치우는 분들에 대한 조언입니다. 좋은 글쓰기도 중요하지만 글을 제대로 읽는 법 또한 바른 언어생활의 기본일 것입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인가를 파악해야지, 그 이야기를 하기위하여 끌어온 전제나 예시, 또는 부연 설명에 의미를 두면 자칫 오독이나 오해를 낳게 되지요. 또한 마음에 안드는 구절이 있다고 해서 먼저 반감을 갖고 글의 문맥을 잃어버린다면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격일 것입니다. 방법이야 간단합니다. 천천히, 이해가 안되는 구절은 좀 생각도 해보면서 차분하게 끝까지 읽는 것입니다.
대략 읽고 말것이라면 별 문제는 없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의견이나 반론을 제시하려면 본문의 숙독과 바른 이해는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람직한 토론의 기본이고, 불필요한 언쟁이 아니라 제대로된 의견 교환의 기초라고 생각합니다..

세번째는 뭔가 이슈가 되는 글에 대한 의견 교환, 또는 토론에서 아주 많이 발생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도 학생 시절에 공부를 못했다, 그러므로 내게 공부를 잘하라고 할 자격이 없다'와 같은 반론입니다. 이것을 논리학에서 '피장파장의 오류'라고 하지요.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도 합니다. 법학에도 비슷한 금언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타인의 부정이 나의 부정을 어쩌구...' 이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확실하지 않군요. 아시는 분의 가르침을 기대합니다.
만약 '피장파장의 오류'를 인정한다면 토론이라는 자체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법의 개념으로 보아도 마찬가지로 죄에 대한 처벌이라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 있지요.
또 하나 많이 보이는 것이 '논점 일탈의 오류'입니다. 주제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논점을 흐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논점 일탈은 조금만 주의하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게 하기가 수월한 편이고 감정 싸움으로 번질 위험성도 적습니다. 반면 '파장파장의 오류'는 '인신공격의 오류'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너는 뭐 잘했다고 큰소리냐?' 이 말이 나오면 그 다음은 거의 인신공격이 따르게 되더군요. 인신공격이 시작되면 토론은 그 시점에서 끝이지요.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피차 감정만 상하고 보는 사람들의 기분까지 나쁘게 됩니다.
'피장파장의 오류'는 매우 유혹적입니다. 논리적인 훈련이 덜되어있어도 끄집어내어 반론하기가 간단하거든요. 뭔가 기분은 나쁜데 마땅히 반론을 제기할 구석은 없고, 딴지는 걸고 싶고, 이럴때 유혹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싸움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파장파장의 오류'를 범하고싶은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얘기가 또 많이 길어지고 옆으로 새기도 했습니다. 마무리로 하오체 유감에서 제가 하고자했던 말을 정리해보겠습니다.
하오체를 쓰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고 경우에 맞게 사용하자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오체는 제대로 쓴다면 그야말로 품위가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른의 문장 한구절을 소개하여, 하오체가 '방법하겠소', '무효라오' 등의 단문에 쓰기 아까움을 보여드리는 것으로 맺겠습니다.

"술이 딱 반병 남았는데 어떤 사람은 벌써 반이나 없어졌다고 슬퍼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아직도 반병이나 남았다고 기뻐한다는 유명한 얘기가 있지 않소. 가을은 이 술병처럼 슬플 것도 없고 기쁠 것도 없이 그냥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주관적으로 그것을 슬프다느니 쓸쓸하다느니 할 뿐이라오. 왜 가을이 쓸쓸한가를 생각하는 것은 술 반병이 왜 슬픈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니, 사람이 가을을 왜 쓸쓸하게 느끼는가를 생각해야 한다오. 즉 사람의 마음 또는 자신의 마음을 탐구해야한다오. 만일 사람이 마음의 고통을 정말 진실로 벗어나려면 마음을 텅 비우는 길 밖에 없소. 마음을 비우지 않은채로 이러쿵 저러쿵 아무리 해봐도 절대로 고통을 벗어날 도리가 없기 때문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