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 주인이신 분의 주장도 들어보니 그분 또한 올타는 생각이 드내요. 지금 이 "박무직님의 대여점 관련 글"을 올리는 의도는, "만화방을 마녀취급해 마녀사냥하러 나가자"가 아니라 "만화를 사서 보자"라는 마음애서 생기는 것임니다.
NOTE: "3000원 만화책은 너무 비싸다"라고 생각되는 분들도 이 글을 한번 보시기를... 미국애서는 만화책이 한달애 한 애피소드씩 남옴니다. 전채 Full Color로, 사이즈는 세로 23.5 cm 가로 17cm. 한 애피소드당 겨우 32패이지(16장) 정도 밖애 하지 안는대 가격이 미화 $2.99(plus tax)임니다. Tax까지 합쳐서 가격을 따지면 한국돈 4000원을 거뜬히 넘슴니다. 미국애서 판매되는 "오 나의 여신님"은, 흑백으로 매달 48패이지씩(24장) 나옴니다. 가격은 $3.50(plus tax)이며 Graphic Novel(단행본)은 $14.95(plus tax)임니다. 한국과 일본애 비하면 아주 비싼 편이지요. 거기다가 대부분의 미국만화는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업는 작품들이 너무 만슴니다.
아무튼, 만화책은 빌려도 보고 사보기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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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박무직님의 대여점 관련 글-Toon과 대여점
키위 03/23 165
이번에는 눈 딱 감고 내 만화에 대해 쓰기로 했다. 속보인다고 말하고 싶으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한권이라도 더 팔고 싶은것이 만화가의 심정 아니겠는가?
이번에 다룰 나의 만화는 'TOON'이다. TOON은 cartoon에서 알 수 있듯이 '만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무튼 2권의 머릿말에 나는 이런 글을 넣었다.
TOON을
비롯한 만화를
상업적인 목적으로
대여하는 것은
저작권의 침해이며
만화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행위입니다.
(사실은 굉장히 큰 글자로 넣을 계획이었지만 출판사 미술팀이 그리 크게 넣어주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책에 넣은 이 글에서 감 잡으시겠지만 나는 대여점을 죽도록 싫어하며 대여점이 한국의 만화계를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곳에서 책을 빌려본적도 없다. 나는 내 책이 대여점에 한권이라도 놓여지기를 원하지 않으며 되도록이면 다른 만화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흠, 말이 났으니 나의 만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잠깐 대여점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책 대여점'이라는 이땅의 어디에나 널려있는 작고 기묘한 장소에 대해 말을 나누다 보면 사람들은 흔히 '비디오 대여점'과 비교한다. 즉, 마찬가지 샘샘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비슷한 것이 사실이다. 좌우지간 이땅의 어디에나 널려있는 작고 기묘한 장소가 아니던가? 그러나 외형적인 비슷함을 제외하고는 둘은 매우 다른 면모를 보인다.
먼저 만화책과 비디오(영화 비디오 테입)는 가격에서 매우 다르다. 만화책은 비디오 가격의 10~20%에 불과하다. 비디오는 냉면보다 비싸지만 만화책은 냉면보다 싸다. 종로에서 신촌까지의 택시비를 절약하면 만화책을 살 수 있지만 잠실에서 신촌까지의 택시비를 절약해도 비디오를 살 수는 없다.
만화책값으로는 서울에서 수원까지 기차비도 안되지만 비디오를 포기하면 (때때로) 부산까지 갈 수 있다. 두 가격의 차이는 단순한 수치의 차이가 아니라 하나의 분기점이다. 한국의 소득수준과 물가, 미디어의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그 분기점은 비디오는 카피하면 돈이 절약되지만 만화책을 복사하면 더 비싸진다는 표현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 분기점에 의해 한국에서는 비디오가 대여되는것이 결과적으로 더 많이 팔린다. 만화책은 그렇지 않다.
또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의 대다수는 원래 '극장'이라는 곳에서 상영되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들이며 보통 그곳에서 상영된 경력이 있고 잘 만들어진 영화는 극장이 주 수입원이다. 만화도 보통 책이 되기 전에 잡지에 연재되지만 잡지는 극장이 아니다. 잡지는 큰 수입원이 아니다. 오히려 잡지들은 보통 적자를 보기 일수이며(광고가 거의 없다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래서 보통 잡지를 내는 출판사들은 단행본의 판매로 적자를 면한다. 잡지는 상당한 의미에서 일종의 '돈받고 팔리는 홍보용 카달로그'이며 이것이 커다란 잡지가 쬐끄만 만화책보다 싼 이유이고 적자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만화시장에선 단행본 시장이 '극장'이다. 실제로 시장구조도 극장과 유사한 면이 많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은 아마도 극장표를 대여한다고 하면 기괴하게 느끼실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만화단행본이 대여되고 있다(만화책가격은 극장표보다 훨씬 싸다). 게다가 끔찍하게도 잡지도 대여점에 놓인다!
만화책 시장은 비디오 시장이 아니라 극장 시장에 가까우며 만화계에는 비디오에 해당하는 것이 없다. 그리고 만화책을 대여하는 것은 극장표를 대여하는 것과 비슷하다. 만화책을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상황은 영화로 따지자면 아마도 극장이 사라지고 비디오 대여점만 있는 상황과 유사할 것이다. 영화가 비디오용 영화만 가득하다면 영화광들은 심장마비에 걸려버리지 않을지?
그런데 만화계의 대여점은 실제 그런 심장마비에 걸릴 상황을 현실화시키고 있다.물론 나는 시장이라는 존재에 해박한 경제학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대여점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것은 아마추어적인 논의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만화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알고있는 자들은 '만화가'이며 나 역시 만화가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제출할 신빙성 있고 지혜로운 증거물이 한가지 있다. 바로 '역사'다. 역사는 언제나 지혜를 준다. 스키피오가 불타는 카르타고를 보며 로마를 생각했을 떄 그의 생각이 지혜로웠던 이유도 그가 역사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 만화계는 작고 기묘한 것이 어디에나 있던 시절을 바로 엊그제 통과해왔다. 정확한 용어로 '대본소' 흔히 '만화가게' 라 불리는 만화의 시장구조를 벗어난것이 불과 10년도 되지 않는다. 대본소시장은 88년 올림픽에 전후하여 학교에서 일정거리내에 대본소가 위치하는 것을 막는 정부정책과 바로 88년 12월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식 만화주간지인 '아이큐 점프'로 인한 일본식 시장구조의 수입. 거기에 결정적으로 '500원짜리 만화' 유통의 결과로 극적으로 붕괴되었다. 거시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성장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대본소 시장의 한국만화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쌍팔년도'에 대본소에 가면 몇몇 만화가들의 만화가 월 수십권씩 나오고 있었다(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사실은 지금도 그렇다). 도대체 한 인간이 만화를 매달 수천페이지나 그려댄다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당시 이 만화책들을 보던 사람들이 가끔 몇초간 생각하다가 잊어버리던 이 의문은 아주 간단한 해답으로 풀린다. 다른 사람들이 그렸던 것이다.
한번 인기를 얻은 만화가는 자신이 그리고 스토리를 구상하는 행위를 거의 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흔히 '만화공장'이라는 것을 운영하는데 수십명의 '문하생'이 몇명 단위의 팀으로 나뉘어지고 이들 팀에 각기 (결코 존재를 밖으로 알리지 않는) 스토리 작가가 한명, 인물을 그리는 형님 문하생과 쫄따구 문하생 수명이 배치되어 만화를 완성한다. 이들 팀은 철저하게 '만화가 선생님'과 같은 그림을 그려 독자들의 눈을 속이고 만화가들은 이들 만화에 자기 이름을 붙여 판매한다. 당연히 만화의 수준은 떨어진다. 그리고 '창작의 진리'도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누가 그리는 것이며 누구의 작품인가? 독자들은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런 공장이 생긴 이유는 대본소가 가진 특징 떄문이다. 최전성기에 만6천 곳 정도가 있었다고 알려져 있는 대본소는 즉 말하자면 최고로 잘나간 만화가 '만 6천권' 팔린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그런데 최고가 아니더라도 특성상 '만 6천권'은 팔 수 있다. 이래도 저래도 만 6천권이다. 어떻게 그리든 그정도 팔리고 수입은 더이상 없다. 게다가 그저 약간의 돈을 내고 번개처럼 후다닥 읽어버리면-옆에 한질 쌓아놓고 '후루룩' 읽어가는 스타일-그뿐인 독자들은 책 제목은 잘 기억을 못하지만 좌우지간 '많은 양의 만화책'을 찾는다.
만화를 고르는 기준도 훌륭한 창작품보다는 슥 보아 '유명한 만화가'의 만화가 되어 버린다. 자신이 소유하지 않으므로 만화책에 대한 애정도 없고 만화책을 그저 시간떄우기용으로 생각해 버린다. 만화의 깊이는 (대부분의 독자에게) 거절당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만화는 '후루룩한 것'으로 인식된다. 그런 결과로 출판사는 신인을 육성하기 보다 유명 만화가에게 보다 많은 '후루룩한 것'을 요구하고 데뷔가 거의 불가능한 상황에서 신인들은 공장의 문하생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 초라한 생산장치가 붕괴하지 않고 버틴 이유는 그저 외국의 걸작들을 수입하지 못하게 하는 정부정책 덕분이었다. 그리고 공장들이 외국의 걸작을 베낌으로서 약간의 재미를 유지할 수 있었기 떄문이다.
여기서 대본소 시장은 어둠을 잉태한다. 유명만화가들을 소유한 출판사가 공룡처럼 성장하여 독자와 만화가, 대본소를 지배하고 권력과 결탁하여 '심의기구'를 조정하였다. 만화의 질이 떨어지고 단가를 낮추기 위해 인쇄와 종이질이 극도로 조악했으며 여러사람이 가는 대여점과 보는 만화책은 '더러운' 것이 되어 버렸다.
조악한 시장으로 힘을 가지지 못한 만화가들은 권력의 더러운 통제와 언론의 정당하지 못한 모함, 민간단체의 초라한 궤변에 대항하지 못했다. 보통 독자들에게 만화는 '후루룩한 것'이었으므로 진지한 만화평론이나 만화연구가 탄생하지 못했다. 쌍팔년도가 지나서야 겨우 단 한명 최초의 '만화평론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
이것이 만화책을 빌려보던 그시절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시절을 탈출하자 신인만화가가 데뷔할 수 있게 되었고 이들도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매니아들이 탄생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만화평론가들도 나타났다. 만화가들이나 만화독자 모두의 수준이 올라갔으며 만화책은 종이와 인쇄가 좋아지고 편집도 우수해졌다. 만화가들은 고도의 테크닉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공장은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만화계는 더럽고 정당하지 못하고 초라한 것들에 항의하고 싸우기 시작했다. 만화가들은 어느날 서로 만나기나 하면 '지옥같은 그때 그시절'을 회상하며 창조의 밤들을 다짐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대여점'이 나타난 것이다. 듣기에도 끔찍한 '대본소'와 발음까지 비슷한 이 대여점은 그외에도 많은 점에서 대본소와 흡사하다. 대여점은 작고 기묘한 모양으로 어디에나 있게 되더니 만화시장을 축소시키고 권당 판매량을 최소화하고 상한선을 규정해버린다. 만화가들이 고통스런 창작으로 걸작을 창조해봤자 결코 보상은 오지 않는다. 흠... 역사는 참으로 지혜를 준다.
때때로 사람들은 나에게 대여점이 순기능을 일부 가지고 있지 않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싼값에 질좋은 작품을 많이 접할 수 있다'라는 기능과 '국민 도서보급에 일조한다'라는 기능이 그것이다.(실제로 한 저명한 만화편집장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정부가 대여점을 묵인하는 이유도 '도서보급에 일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기능은 한마디로 말해 허위이며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이고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다.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다. 후자('국민 도서보급에 일조한다')부터 말하자면 대여점은 국민도서보급에 결코 일조하지 않는다.
YWCA의 조사(이 단체는 이런걸 많이 조사한다)에 의하면 대여점의 대다수는 비취한 도서중 만화책 비율이 70~90%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는 잡지이고 또 나머지는 하이틴 로맨스나 무협지(이들은 과거 대본소에서도 있었다) 극소수가 잘나가는 대중소설이다. 전문서적이나 고전은 이곳에 없다. 교양도서도 거의 없다. 학술지는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대여점은 만화대여점이며 만화책을 빌려주는 곳이다. 대여점은 모든 면에서 '도서관'이 아니다.
전자의 주장: '싼값에 질좋은 작품을 많이 접하게 한다'에 대해 말하자면 대여점은 과거 대본소의 변형재생산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독자들은 만화를 단지 '많이' 접할 뿐이어서 만화를 깊이 감상할 기회는 거세되며 만화의 가격을 '싸게' 함으로 해서 만화를 '질나쁘게' 만들어 버린다. 싸구려 만화가 양산되도록 하여 '만화보급'에도 일조하지 못한다. (추가로 '대여점은 옛날 만화를 볼 수 있게 한다'라는 견해가 있는데 대부분의 대여점 역시 신간중심임을 지적하며 옛날 만화는 현재 한국에서는 '헌책방'에 가서나 볼 수 있다)
게다가 다음과 같이 물어볼 수 있다. '만화가 그리 싼 예술인가?' 만화는 싸지만 그정도로 싼 예술이 아니다. 만화는 영화에 비해 대단히 저렴하게 생산되지만 대신 제작진도 대단히 적으며 창작자의 생존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같고 일정한 흥행을 필요로 한다. 나에겐 만화는 지금도 매우 싸다. 비디오가 2만원이 넘고 극장에 한번 가는데 6천원이 지불되는데 만화책은 겨우 3000~3500원으로 책 자체를 소유 할 수 있다(나는 극장도 잘 가는 편이다). 만화가이자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이시가와 준'은 그의 매력적인 저서에서 자신이 해본 결과 '만화는 소설보다 2배 3배 더 힘들고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보통의 만화는 보통의 소설책보다 가격이 절반이하이다. 만화책은 지금도 매우 매우 싼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물어보고 싶다. 3천원은 만화를 읽기에 정당한 (혹은 저렴한) 지불이 아닌가? 만화책을 대여한적이 한번도 없는 나는 3천원이 싸다는걸 알고 있다. 만화를 지금보다 더 싸게 소모시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만일 극장표가 500원(=만화 대여비) 한다면 영화는 붕괴해버릴 것이다. 만화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안좋은 사실은 대여점에서 획득하는 수입이 창작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데에 있다. 만화가 김준범은 '대여점은 도둑질을 하는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만화를 소모하는데 드는 비용은 당연히 밤을 새며 생명을 깎으며 만화를 그린 만화가와 책으로 만든 출판사에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창작의 고통을 느끼지도, 제작에 전념하지도 않은자들이 단돈 얼마에 만화책을 사서 돈을 벌고 있다. 도둑질이다'라고 단언한다. 옳은 말이다. 대여점 주인들이 2천 몇백원 정도에 총판에서 만화책을 산 후 100회 대여를 했다고 하면 그들이 얻는 수익은 5만원에 달하지만 만화가는 3백원을 받는다.
누가 봐도 이는 결코 정당하지 못한 일일 것이다. 억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시는지? 억울하니? 당하는 우리들: 억울해요!
단언하는데 만화책을 빌려보아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다. 어디까지나 선형적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수용자에게 폭넓은 감상방식의 자유를 부여하는 만화라는 매체는 구매하여 시간을 들여 읽어야만 그 깊이와 재미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법이다. 만화의 진정한 깊이를 이해하고 만화가가 자신의 만화에 쏟아넣은 흥미로운 온갖 것들을 다 맛보기 위해서는 빌려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반면 만화를 빌려보기 시작하면 만화역시 한번보면 끝나버리는 수준에 강제적으로 머무르게 된다. 즉, 수준이 떨어져버린다. 대본소의 역사가 이를 증언하고 있다.
대여점의 결과는 무엇일까? 우리는 대여점의 결과를 과거 대본소의 역사를 돌아보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극장이 붕괴하고 비디오 대여점만 남아버린 영화시장을 가상함으로 해서 상상해낼 수 있다. 일본에도 50년대 지금 대여점과 같은 만화책을 빌려주는 곳이 있었다. 일본의 만화가들은 당시 대여점 만화와 잡지 만화가 현격한 질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고 회상한다. 이 일본의 대여점은 그 이후 사라졌다. 나는 대여점이 처음 나올 무렵 과거의 대본소를 떠올리며 최악의 시나리오로 미래를 경고했다.
그런데 지금 이미 그 최악의 시나리오가 실현되고 있다(너무 예상대로 가고 있어서 내가 스키피오인가 스키피오가 나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결국 출판사들은 '잡지 연재외에 단행본용 만화를 창작하여 출판'한다고 선언하고 대여점용 단행본 시장에 뛰어들었으며 일본만화를 무더기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공포스럽게도 이제 한국의 만화출판사들은 대여점을 견제하던 시기를 넘어 이제 대여점 시장에 순응하였다.
만화가들은 보름에서 두달에 최소 한권의 창작을 요구받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날림에 날림을 거듭한다. 보름에 한권이란 과거 창작의 한계속도라 불리던 '주간지 연재'보다 6~10배의 속도이다. 작품의 수준도 그정도이다. 어떤 만화가는 3명이 팀을 이루어 보름에 한권을 그리는데 콘티도 없이 그린다고 한다. 당신이 만화의 수준을 논하려 하는가? 그럼 먼저 빌려보기를 멈추어야 한다.
어쩌겠는가? 대여점에 청보법까지 겹치면서 이제 서점에선 만화책이 사라졌으며 큰 서점은 '만화책따위는' 팔지 않는다. 서점의 시장이 축소되고 대부분의 일반 독자들이 만화=대여를 당연시하는 현실에서 대여점 시장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망해버리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겠는가? 망할 수야 없지 않나? 그러나....
나는 자기 글에서 자기만화를 소개할 정도로 자신의 만화가 잘팔리기를 간곡히 바라는 철면피한 만화가이다. 나는 눈꼽만큼도 망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하는 만화를 죽이는 세상에 순응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만화가 망하고 잊혀질 가능성을 감내하고 나의 책 머릿말에 글을 넣었다. 일부 예술인들의 비통한 결의인 '불타버리자'는 나의 모토이기도 하다. 나와 나의 만화는 운명보단 죽음을 선택하기로 했다.
어? 지면이 다되었군. 아무튼 이번 글은 나의 만화 'TOON'관한 글이 맞다. 툰은 만화라는 뜻이다.
1997년 키노
after
영화전문지 '키노'에 이 글이 발표된 뒤 통신가에서는 나의 글을 중심으로 대여점에 관한 토론이 있었다. 국내 최고의 만화, 애니메이션 메니아들의 모임이라고 알려져 있는 통신 동호회에서의 그 토론에서 참가자들은 주로 대여점의 정당성과 유익성을 설파하는데 노력하고 있었다. 한 만화가는 그 토론을 보면서 '절망'을 느꼈다고 말했는데 나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때의 참가자들이 그 동호회 혹은 통신계일반의 생각을 대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통신에서 있었던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 중 주목할만한 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다.
1. 만화를 사서볼지 빌려볼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고 개인의 자유다. 강요하지 마라.
2. 만화는 질적인 측면에서 영화와 소설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내가 만화책값을 영화표값과 소설책값과 비교한것에 대한 이야기)
3. 만화책이 랩핑되어 있는 현실에서는 만화책을 사서 후회할 가능성이 너무 크다. 대여점은 구입할 만화책을 고를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시식코너'인데 대여점에서 책을 보는 것은 서점에서 책을 읽는것과 같은 행위가 된다. 즉, 대여점은 만화책이 더 많이 팔리도록 한다
4. 대여점, 혹은 대본소용 만화를 무조건 저수준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본소 시절만 봐도 수많은 걸작들이 탄생했다. 오히려 잡지에서는 대본소에는 없는 시간적 한계 때문에 졸속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5. 지금 상황에서는 구매층이 너무나 가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6. 대여점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7. 누가 3000원이나 주고 만화책 보냐?
나는 여기서 그 의견들에 대한 나의 생각을 피력하고 새로운 정보들을 조금 더 제공할 생각이다.
1. 사서보거나 빌려보는 선택이 개인의 자유라는 생각은 당연한 일이다. 나역시 구입한 책을 빌려주거나 혹은 빌려보는 것은 당연한 자유이며 권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빌려주거나 빌려보는 것, 그리고 도서관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비영리적으로 만화책을 열람할 수 있게 하는것에 찬성하며 그것에 대해 반대한적은 없다. 그러나 저작권이 존재하는 책을 유료로 판매하거나 유료로 대여하는 행위는 분명 개인의 자유와는 거리가 있다. (물론 대여를 목적으로 한 창작된 만화는 예외다)
2. 소설과 영화, 만화의 질에 대한 비교에 대해서는 침묵하기로 하겠지만 통신 동호회에서 그에대한 단 한마디의 반론도 올라오지 않았다는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또한 작품의 질과 가격은 비례관계에 있지 않다. 걸작만화가 졸작만화에 비해 비싸게 팔리는 것은 아니며 걸작영화의 영화표가 더 비싸지도 않다. 가격은 다른 적절한 요인에 의해 책정될 것이다.
3. 대여점이 만화책을 더 팔리게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탁상공론식 괘변이며 현실을 무시한 상상속의 경제학이고 자신의 행위는 모두 정당하고 이롭다는 기이하고 유아론적인 독선이다. 대여점에서 책을 보고 서점으로 달려가는 일이 실제로 극소수 발생한다는 점에 상관없이 대여점으로 인해 서점에서 원하는 만화책을 구입하기는 점차 힘들어지고 있으며 한 만화기자의 증언대로 신간판매율은 감소했다. (왜 감소했는지는 아래에서 설명하겠다.)
또한 많은 출판사 관계자들과 서점이 증거하듯 만화책을 서점에서 서서 읽게하면 판매율이 매우 떨어진다. 만화책은 구독시간이 짧기때문인데 그 때문에 현재 모든 만화책들은 랩핑을 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유치한 어거지 주장에도 일말의 진실은 담겨 있다. 그것은 랩핑이 만화책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현실이다. 랩핑은 만화잡지를 카달로그삼아 보고 단행본을 소장하기 위해 구입하는 시장구조에 적합한 장치이다. 그러므로 나는 현재의 후진국형 만화시장구조에서는 선진국형 장치인 랩핑이 적절하지 않다고 믿고 있다. 나는 만화에 랩핑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점에서 서서 만화를 읽는 독자를 늘이는 편이 만화독자를 서점으로 향하게 하므로 유익하다. 만화독자를 서점으로 끌어들여야 만화책을 판매할 수 있으며 서점이 신간을 비취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4. 나는 대여점과 대본소 작품들을 모두 저질이라고 매도한적이 없으며(참고로 대여점작가들 중에는 나의 친한 동료와 선배들이 있다) 대본소시절 수많은 걸작들이 있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걸작들의 수와 전체 작품수와 대본소가 존속한 기간을 따져보면 대본소가 걸작의 토양이라는 의견을 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대여점 상황에서 걸작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여점 상황은 걸작의 창조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여점용 단행본을 하는 나의 동료 작가들이 직접 증언하고 있다. 또한 걸작을 만든 만화가가 어울리는 대가를 받는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대작가와 걸작이 아니라 신인 혹은 무명작가와 그들의 작품이다. 그들에게 대여점은 고문도구와 같다. 심한 경우 권당 원고료(인세없이)는 겨우 60만원. 페이지당 5000원으로 어시스턴트비는커녕 재료값도 나오지 않는다. 또한 메이저 만화출판사에서 권당 90만원을 주고 만화를 그리게 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것이 일반인이 모르는 대여점 시장이라는 것의 현실이다. 용돈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 배고픔과 미래, 창작에 대한 절망. 대여점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대여점만화는 시간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역시 사실과 다르다. 이미 본문에서 밝혔듯이 모든 대여점 작가들은 주간지보다 훨씬 혹독한 시간제약에 시달리는데 당연하게도 주간지는 16페이지만 그리면 다음호를 볼 수 있지만 단행본은 150페이지는 그려야 다음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초고속의 졸속 창작은 질보다는 빨리 나오는 시리즈가 많이 빌려본다는 대여점의 생리에 의한 것이다.
내가 키노에 글을 발표한 뒤 나는 '대여점은 대본소 환경의 변형 재생산이다'라는 나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증거 몇가지를 더 수집할 수 있었다. 나는 대여점 시장구조로 개편된 지 불과 1여년만에 최소한 한 개의 '만화공장'이 탄생하였다는 증언을 들었다. 그 만화가는 대여점용 만화로 히트를 쳤는데 현재 60명이라고 알려진 문하생을 거느리고 있으며 그의 작업실에는 '구내식당'과 '편의점'까지 존재한다고 한다. 이 부활한 만화공장은 무덤에서 일어난 시체를 연상시킨다. 즉 절망의 악취를 풍긴다.
5. 6. 나는 이땅의 어린 독자들이 매우 적은 용돈을 받으면서도 만화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들에게는 그저 미안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또 아무리 떠들어대든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바뀌지 않는다, 그리고 돈이 없다. 어것은 분명한 현실이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 현실로 인해 만화계가 자꾸자꾸 침몰해가고 있으며 만화가들은 더더욱 고통을 받고 있고 만화가지망생들이 설 미래따위 사라져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지 못한다.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외치기를 멈출 수는 없다. 노력하기를 멈출 수는 더더욱 없다.
내가 돈을 밝히는 이기주의자라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다. 위의 현실을 바꾸자고 창작의 대가가 창작자 자신에게 가게 하자고 하는 주장이 어찌 이기적이고 돈을 밝히는 것이란 말인가? 나는 그런 주장이야말로 오히려 이기심의 극치라고 느낀다.
7. 보지마.
현재 만화계의 상황은 최악의 그것이다. 많지 않은 잡지들에 그나마 일본만화의 비중이 더 늘어났기 때문에 신인작가들이 데뷔하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은 더욱 악화되었다. 신인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대여점용 단행본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업자들의 증가와 이들을 노린 대여점 체인망으로 인해 97년 말에서 98년 초엽까지 대여점은 폭발적인 증가를 기록했다. 만화평론가 손상익의 자료에 의하면 수개월동안 몇천개의 대여점이 '창업'했다고 한다. 이 창업은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서 대여점용 단행본 출판에 일시적인 붐을 일으켰다. 지금 한국의 골목골목은 대여점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대여점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신간판매율의 감소는 무엇인가? 대여점이 늘었다고 사람들이 만화책을 더 빌려보는 것은 아니다. 그저 대여점당 수익이 '나눠먹기'로 줄어들 뿐이다. (사람들이 만화책을 더 보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 가게만 늘어난다고 수요가 늘어나겠는가?) 결국 지금의 대여점의 증가는 거품이기 떄문에 조망간 급속히 줄어들어 다시 안정기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보여진다.
나의 예측이 맞다면 결국 '사장님'들의 대다수는 다시 실업자가 될 것이며 'IMF 유망 신종 창업'은 환상에 불과했음이 밝혀질 것이다, 대여점은 이미 많이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는 결코 고용을 창출할 수 없다. 나의 관심은 거품처럼 늘어난 대여점들이 사라질 때 많은 만화가들과 출판사, 독자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점이다. 상황은 조망간에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이미 그 조짐으로 짐작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대다수 대여점 사장님들은 만화에 대한 어떠한 식견도 없이 그저 안정되고 잘팔리는 작품만 찾기 때문에 신간과 신인작가 작품의 판매율은 떨어지게 된다. 서점의 경우에는 안팔리는 책은 반품해버리면 되고 책을 한권 두고 그게 팔리면 그만이지만 대여점의 경우에는 대여율이 낮으면 구입가보다 대여수익이 작거나 보잘것없기 떄문에 기피하고야 만다.
그럼으로 해서 매니아 취향의 소수를 위한 작품들은 과거에 비해 더더욱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한 만화잡지의 팀장의 증언대로 잘나가는 잡지나 못나가는 잡지나 판매율의 차이가 불과 몇천부에 불과한 기이하고 불행한 상황도 닥쳤다.
대여점은 '싸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다양한 작품을 접하는' 곳이 아니다. '싸기 때문에 상업적인 만화만 팔리는'곳이 대여점의 정체다.
그글은 욕설때문에 올리기가 힘들군요
수정해서 올리려고해도 -_-;
그글은 만화가가 직접쓴글이었는데...
수정되면 올려도 될런지...
쿨랜드님 그리고 저는 글은 잘쓰진 않지만 매일 들리는 킹오파매니아입니다...
제가 쓴글 삭제하면 발걸음을 돌릴지도 ㅠ_ㅠ (나이먹은넘이 주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