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오재성 선생님의 글
(조선팔도사관인 반도사관에서 탈피해야 한다)
一. 사서를 한반도에 맞추는 것이 반도사관
삼국사기를 한반도역사로만 연구하는 것이 반도사관
삼국시대 이전을 알수 있는 사료로 국내에서는 삼국사기가 유일한 사서다.
삼국시대를 부정하지 않는 한 취할 수밖에 없는 사서임에도 불구하고
500년 이상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고
근세이후에는 사서를 반도에 맞게 취사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는데
이 취사선택하겠다는 것이 바로 반도사관에 의한 한반도 역사맞추기 였던 것이다
사서를 통해서 각 나라의 위치를 찾아야지
존재위치를 한반도로 정해 놓고 사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 시대를 나타낸 사서를 보는 시각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사서를 맞추니 모든 상황을 부정하게 된 것이다
삼국사기는 결코 한반도만의 역사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역사는 한반도만의 민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삼국사기가 나타낸 지역이 우리의 삼국시대 활동지역인 것이다
고구려는 초기에 한나라와 북평 어양 상곡 태원에서 전투를 하였다.
말기에는 은성 고대인성 신성 용도가 있는 지역에서 전투를 하였다.
이것을 외면한 것이 바로 반도사관 때문이다
백제는 동명 덕안 항성 제성 평원 황산 주류성 동성 잠산 등이 있는 곳에서 활동하였는데
반도사관에 의하여 위치를 찾지않고 있다
사로신라는
항성의 동쪽에 있었는데
양잠 면 나침반재료 쇠뇌를 생산한 나라이며
8.15, 9.9의 명절을 가졌으며
기자의 땅에서 존재하였는데
반도사관 때문에 밝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삼국사기 내용이 하나되는 사관이 민족사를 바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25사 동이전은 우리역사 기록임을 자인하면서도
동이들이 활동한 지역이 한반도라고 우겨대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반도사관 때문이다
동이전은 삼국사기와 다르다
삼국사기는 나를 나타낸 것이니 지명만 있지 위치가 없다.
그러나 동이전은 각 나라의 배열을 기록하고 있고
그곳에 지명을 삽입하면 정확하게 그 위치를 파악할수 있음에도
동이의 활동무대를 한반도에서 진행된 것으로 연구하고 있다.
더욱이 삼국시대 지명이 존재하는 지역은 한반도가 아니고
중국임에도 한반도역사로 보는 것은 바로 반도사관 때문인 것이다
특히 한나라와 고구려 전쟁지명이 있는 곳도 현 중국 땅이요,
당나라와 고구려 전투지명도 현 중국에 있다.
당과 백제의 전투지명도 현 중국에 있고 백제 군명이 있는 남제서의 지명도 중국에 있다
삼국유사는 동이전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위서를 통하여 단군조선을,
신 구당서를 인용하여 변한, 신라를 등등
많은 부분에서 동이전을 인용하고 있다.
물론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도 기록되었을 것이나
이 역시 삼국사기와 같이 위치를 나타내는 것은 25사 동이전에 미칠수가 없다.
삼국유사를 한반도의 역사로 인식하고 연구하는 것도 반도사관 때문으로 보아야 한다
삼국유사는 같은 시대 신라왕이 각각 다르게 표현하고 있음도 특이한 것이다
특히 삼국유사는 신라와 가라 중심사라는 것도 특이하다
이곳의 가락국기는 삼국사기 25사동이전과의 공통부분의 가라의 위치를
한반도로 확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고려 강역을 한반도내로 확정하고 있는 것도 반도사관이 빚은 비극이라 할수 있다.
분명히 고려사에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주까지도 포함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교과서에서는
고려는 한반도 남부만을 통치한 것으로 가르치는 것이
반도사관이 빚은 결과임을 모르고 있다.
고려사 권137에 기록된 명나라가 철령위를 설치하려 하니
우가 밀직제학 박의중을 보내여
"철령(鐵嶺)으로부터 북(北)으로 가면서 문 고 화 정 함(文 高 和 定 咸) 등
여러 고을을 지나 공험진(公 鎭)까지는 자래(自來)로 우리나라의 땅이다."
고려사 제42권 공민왕19년(1370) 7월 동령부에 출정 동년 12월에 평정하였고
그 때 "요심은 본래 고려의 옛 강토이다(遼瀋元係本國舊界)"라고 하였고
또 강계만호로 하여금 방문을 붙이는데 요 심(遼 瀋) 사람들에게 타이를 때
"요양은 본시 우리나라 지경이다(遼陽元是國界)"라고 하였으니
원나라말경에 고려는 옛 땅을 회복하였다.
1370년 1월 동녕부를 평정하고 북방사람들이 귀순하여 왔는데
"동쪽은 황성까지,
북쪽은 동녕부까지,
서쪽은 바다까지,
남쪽은 압록강까지의 지대에 적의 종적이 없어졌다
(東至皇城北至東寧府西至于海南至鴨綠爲之一空)"
하였다.
분명히 소개한 내용은 한반도가 아니라 만주를 나타내고 있는데
기록이 있으니 밝혀야 될것이 아닌가
그리고 야사를 부정적으로 보는것도 반도사관 때문이다.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이후에
조선팔도의 백성들은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하고 있다.
무심코 뱉은 말로 생각되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 건국이후에 단일민족이라 말하는 개념은
남북한 백성을 통틀어 하나로 보는 개념이다.
더하여 16세기 이후에 만주로 간 조선팔도의 후예들도 포함하고 있다.
만주는 근세조선의 강역에서 벗어나고 명과 청의 영역으로 있었다.
그러니
한반도만 통치한 나라는 근세조선이고
근세조선 후예를 단일민족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이전의 신라인 고려인 중에서
조선팔도인이 아니었던 백성들
즉 만주에 살던 사람들은 훈민정음 반포 지역인 조선인과
말과 글이 달라 조선팔도인과 동일하게
동포로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현재의 단일민족 개념은 근세조선 후예들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만주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16세기 이후에
조선팔도에서 이주한 유민의 후예로 밝혀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 보아야 한다.
영역을 기준으로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근세조선 강역을 기준으로 하고 있음은 근세조선 국가사관인데
이를 반도사관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3. 삼국후예는 하나되지 못하는 단일민족이라는 말
만주인이 빠진 단일민족이라는 것이다.
조선팔도인 후예만을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는 고구려 발해 신라 고려인으로서 만주에 살던 그들의 후예는
단일민족에 포함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단일민족개념이다
삼국의 후예로 자처하는 우리들이
삼국후예가 하나되지 못하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은
한반도를 하나로 하였던 나라는 역사상 근세조선이 최초이니
근세조선 국가사관에 의한 것이 바로 반도사관인 것이다
고구려 발해가 만주에서 건국하지 않았다고 하던지
고구려 발해를 우리역사라고 하지 말던지 하기전에는
분명히 우리조상들의 나라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고구려 발해의 후예가 우리민족에 포함하지 못하는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은
결국 근세조선 국가사관에 의한 것이고
이는 바로 반도사관에 의하여 만들어진 말로 보아야 한다
三. 남북통일이 조국 또는 민족통일이라는 말
조국이란 조상때부터 살아온 땅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남북한이 하나되는 조국은 근세조선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은 아닌지
고려때나 신라때는 만주까지 통치하였으니
고려나 신라시대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래서 고려나 신라가 만주까지 있었던 기록들을 인정하고 밝히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려나 신라강역을 밝히지 않고
그리고는 만주는 여진족의 땅으로 보았고
근세조선 영역안에 살던 후예들을 조상으로 보는 반도사관으로 보았기 때문에
남북통합을 조국통일이라 말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무엇이 반도사관인가를 살펴서 그것으로부터 과감하게 탈피해야 할것이다
글쓴이 : 오재성 선생님
참고자료(사서) : 신당서, 구당서, 삼국지위서, 삼국유사, 삼국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