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오늘 낮에 있었던 전투에서의 두려움이 씻어지지가 않는다.

막사(배럭)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우스건을 손질하고 있는 동료들의 눈에는 어떤 공포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씻을 수 없는 범죄를 짓고, 사형대 앞에서 죽음대신 전투인간 머린으로의 개조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사랑, 연민, 슬픔 이런 느낌 들은 그들의 인내가 없이도 "강제 감성신경 제거 수술"로, 아예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본능적 행동과 연방을 위한 충성심 만이 있을 뿐이다.

광물탐사 및 적지 정찰 임무를 띄고, 나는 동료 2명과 출동하였다.

짙게 깔린 검은 안개 (우리는 이 안개를 워포그라 부른다)속을, 금방이라도 무엇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기분 나쁜 상상을 억누르며 한발 한발 전진하였다. 강물 흐르는 소리가 조금씩 감지 되고, 헬멧속 스캐너에 보여지는 목표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한 30분쯤 시간이 흘렀을 때 미네랄 광산 하나와 베스핀 화산 둘을 발견한 뒤 본부에 보고하고 복귀 신청을 하였다. 본부에 승인이 떨어졌다. 다만 퇴로를 반대편으로 잡아서 적지 정찰을 하며 귀환하라는 명령이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운을 다시 한번 시험해볼 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지시대로 조금씩, 조금씩 수색을 하며 복귀로를 밟아 나갔다. 강물 소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심장박동 소리가 그것을 대신하였다. 칠흙같은 워포그속을 향해 한발 한발 발걸음을 하나씩 더할 때 마다 나의 심장은 점점 더 거세게 움직였다. 얼굴은 땀으로 얼룩지고 온몸은 땀으로 젖은지 오래였다. 나의 몸이 터질 듯 최고조에 올랐을 때 갑자기 "적발견"이란 메시지가 빨간 경고 램프에 깜빡거림과 함께 헬멧 스캐너에 떳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재빨리 몸을 은폐하고 적 상황을 체크하였 다. 적 돌격대로 보이는 저글링족 20마리.



... 2

다행히 히드라 리스크는 없다. 적은 아직 우리를 보지 못한 듯 했다. 다시 본부에 보고하고 지원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아직 병력이 많지 않아서 투입이 불가능하니 자력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었다.

앞이 캄캄하였다. 조금만 움직이면 적들이 우리를 발견할테고, 대기하고 있으면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초조함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적군 근처에 반짝거리는 것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벙커 ! 살수 있는 방법은 한가지!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동료들과 신호를 맞추고 그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적들은 곧 우리를 발견하고 괴음을 뿜어내며 우리에게 맹렬히 밀려왔다. 미친 듯이 쏴대면서 벙커로 향했다. 그때 아머게이지(총알액정게시판)는 150발을 가리켰다. 오늘 새벽 프로토스 질럿 군대의 침공으로 아군기지가 피해를 입는 바람에 애머는 평상시의 3분의1 밖에 안되는 양을 지급 받았고 스팀팩은 아예 지급받지 못하였다. 가우스(총)를 자동모드에서 점사 모드로 전환하고 벙커가 있는 쪽으로 달리면서 응사 하였다. 밀려오는 저글링, 벙커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50m, 30m, 20m...... 아머게이지 50,40,30.20.

너무도 숨막히는 상황이었다. 만약 우리가 10초만 더 늦었더라면 벌써 찢어진 고기 조각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다행히 벙커에는 비상용 아머가 있었다. 자동모드로 총을 전환하고 벙커 지붕으로 밀려드는 저글링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날카로운 적들의 앞 발톱이 300mm 두께의 벙커 강판을 긁어대는 소리와 쓰러지며 내는 비명, 공격할 때 내뿜는 광란의 괴성은 가우스의 총성과 뒤섞여 우리를 완전히 압도하였다. 그러기를 한시간 벙커 안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폭발하려는 것이다. 벙커가 달아올라 강화 전투복안이 땀으로 가득 찼다. 이제 남은 총알도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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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내 눈빛이 벙커틈으로 저글링의 야욕 에 찬 눈빛과 마주 쳤을때 싸울 의지조차 빼았겨 버렸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죽음의 공포란" 그 자체보다 기다림이라고들 한다. 수많은 상상 때문이다.

어릴적 칼에 배였을 때의 아픔, academy(사관학교)에서 훈련중에 입은 총상의 통증, 부비트랩에 걸려 입은 상처, 죽어갔던 동료들의 고통스러운 비명, 이 모든 것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벌어질 일 들이다. 오히려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고통을 호소해도 적들은 내 숨이 끊길 때 까지 날 계속 찢어 나갈 것이다. 내 머리가 살아있는 동안 찢겨진 내몸과 고통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보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난 오늘도 마지막 애머 한발을 나를 위해 남겨뒀다. 안락한 마지막을 위해서......

죽음을 기다리며 무의식적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애머게이지에 0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마지막 한발을 장전한 뒤 내 머리에 겨누었다. 벙커가 터지는 즉시 난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바로 그때 ! 끊임없이 총알을 날린 덕분일까? 동료들의 애머게이지가 천천히 줄어들었고 적들의 긁어대는 소리 또한 함께 줄어들었다. 벙커 안은 서서히 식어갔고, 그리고는 고요만이 남았다.....

곧이어 "이제 나와"라는 메시지가 나의 전투헬멧 내장스피커로 들려 왔다. 낯익은 목소리였다. 재빠르게 벙커를 벗어났다. 오! 마크, 나의 친구, 그는 SCV조종사다 광물을 채취하던 중 공격받는 우릴보고 저글링 사이를 뚫고 벙커를 고쳐준 것이다.

낮에 있었던 악몽과도 같은 전투를 회상하면서 나는 배럭을 빠져 나왔다. 마크를 만나 한잔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GoGo Bar" 기지내부 써플라이에 설치된 유일한 위락시설이다.



... 4

자욱한 담배연기와 테이블에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가득 찬 사람들,

그리고.200년전 지구에서 유행했다던 "호세비우스"라는 가수의 "I know what life means"라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전형적인 Alcoholic Bar의 모습이다.

"마크 고마워,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어 아까는 내가 정신이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 하고.. " 마크가 있는 테이블에 앉으며 던진 말이다. "어이, 머린 아저씨 아냐? 이제 살았나 보구만? 고맙다는 농담도 다하고 말이야 하하 ." 마크는 정말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다. 나는 마크의 이런 면이 정말 부럽다."아니 이 친구야 농담이라니? 정말 고마워 "잠시 마크의 눈을 응시하며 나의 진심을 표현하였다. 마크도 더 이상은 농담을 하지 않았다. 나의 진지함을 깨고 싶지 않아서 일것이다. "뭐 좀 마셔야지?오늘은 내가 살게, 뭐 마실래?" 고마움을 몇 잔의 illusionary Beverage(환각 음료)로 대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 라도 고마움을 표 시하고 싶었다. "좋아 그럼 한번 뜯어먹어 볼까? illusion 두 잔 하고 Mars Worm Fried(화성에서 사는 뱀과 유사한 벌레 튀 김)하나" 테이블에 부착된 order pad에 품목을 입력하고 내 ID 를 입력하였다.( 내 credit에서 지불되게 하기 위해서다.) 써빙 로봇이 주문한 것을 바로 가져왔다. "마크 건배할까? SCV조종사 마크의 진급을 위해서" 마크의 꿈은 레이스 조종사이다. "하하 고맙군, 그러면 나두 너를 위해 건배하지 해리의 사랑을 위해서.

"나의 이름은 해리슨, 해리슨 마틴이다. 해리는 나의 애칭이다.

마크에게 앨렌에 대해 얘기 한 적이 있다. 앨렌은 메딕이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laxmor 사단과 연합작전을 할 때였다. 적 프로토스군과 교전 중에 드래군 1부대로부터 나를 구해준 여인이다. "마크 또 놀리는구만, 짖꿎기는......

"정말이다. 오늘은 그녀가 너무 보고 싶은 날이다.

영원히 그녀를 보지 못할뻔 해서 일까? 정말 보고 싶다.



... 5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나를 구해주고 난 뒤 두달째 되는 날이었다.

기지내부에 프로토스군의 프로브가 폰톤캐논을 은밀히 건설할 것이라는 스캔센터의 첩보가 있어서 기지내부의 순찰임무를 부여받았다. 앨렌도 지원명령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앨렌은 그때까지 지난번 자신이 구해준 사람이 나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알았다 할지라도 머린이 자신을 기억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가끔 씩 뒤를 경계하는 척하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다. 잠깐 잠깐 훔쳐보는 얼굴이지만 횟수가 더할수록 그녀의 얼굴은 더욱 뚜렷이 내 기억속에 자리잡았다. 놀란 듯 커다란 눈과 우주의 암흑을 닮은 새카만 눈동자, 그리고 눈 사이에서 아담한 뿌리를 이루며 동그란 코 끝을 향해 직선인듯 곡선인듯 시원하게 내리뻗은 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체리베리 같은 입술.. 헬멧안으로 엿보기에는 너무 아쉬운 그녀의 얼굴이었다. 임무는 까맣게 잊고 그녀의 머리카락 색을 상상하고 있 었다. '갈색? 검정색? 아니야 금발일지도..' 행복한 상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머린! 저쪽을 보세요" 3시방향 이었다 적 프로토스군 수송선으로 보이는 비행물체가 돌아가고 있었 다. 무엇인가 내린 것이다.

무엇일까? 만약 프로브라면 파일런 건설이 끝나기 전에 잡아야 했다. 그리고 다른 것이라면 걷잡 을 수가 없었다. 기지입구를 방어하느라 아크라이트 탱크(시즈 탱크)를 비롯한 모든 병력이 배치 되어있었고, 그 병력을 움직 인다면 기지입구로 밀려드는 적군을 방어할 길이 없었기 때문 이다. 본부로 황급히 병력지원을 요청하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만약에 사태를 대비한 조치였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전기가 합선될 때 내는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파일런이 완성되고 있었다.



... 6

프로브였다!

센터의 첩보는 적중했다. 파일런의 주변에 밝게 빛나는 두 개의 빛의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빨리 잡아야 했다. 가우스건을 빛을 향해 발사하였다. 하나는 잡았다. 다른 하나에도 사격을 가했다. 빛이 사라졌다. 그러나 내가 두 개를 없애는 동안 녀석은 또 두 군데에 이미 빛을 만들어 놓았다. 프로브를 잡아야 했지만, 할 수 없었다. 프로브를 잡기전에 폰톤이 생기는 것 부터 막아야 했으니까. 숨바꼭질 하듯이, 이걸 잡으면, 다른 것이 생기고, 또 그것을 잡으면 또 다른 것 이 생기고, 위급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짜증스러움이 느껴졌다. 전투 중에 처음 느껴보는 배부른 감정이었다. 아마도 앨렌이 뒤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기 때문이 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멋지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의 허세를 부축였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인간병기 머린이 아니라 한 평범한 남자로 돌아갔었던 것이다. 내 모습이 앨렌에게 정말 한심하게 비쳐질지 모른다는 생각은 날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다. 결국 스팀팩을 주사했다.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지만 참아야 했다. 우선 멋있게 끝내야 했기 때문이다. 미친 듯 쏘아대고 나서, 도망가는 프로브를 향해 마지막 정리탄을 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