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풍금 -장필순 한동준 노래>
어느날 문득 그리움처럼
봄날의 향기 파고드네
어둠에 묻힌 내 맘의 풍금
잠에서 깨어 울려오네
**정신없이 뒹굴던
우리 어린 날을 지나서
아프도록 푸른꿈 거기 어느새 피어나
눈부신 햇살 날리는 꽃잎
모두다 어지럽게 치루었던 계절
사랑의 슬픔 사랑의 기쁨
모두다 아름답게 타오르던 불꽃**
어느날 문득 그리움처럼
봄날의 향기 파고드네
** **
어둠에 묻힌 내 마음의 풍금
잠에서 깨어 울려오네
초등학교 6학년때 선생님은 아이들 자리 배치를 이상한 방법으로 하시곤 했다. 가장 공부 못하는 애들을 순서대로 앞 자리에, 잘하는 애들을 또 순서대로 맨 뒷자리에 앉히거나 ,잘 하는 애들을 한 줄로 길게 그리고 공부 못하는 애들을 잘하는 아이 옆 자리에 한 줄로 죽 앉히는 그런 식이었다. 길게 앉힐 경우에는 키가 고려되기도 했다.
아무튼 그 당시의 나는 그렇게 앉는 게 얼마나 아이들에게 상처 또는 그릇된 우월감을 심어줄 수 있는가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니 섬뜩하고, 끔찍하다.)
뒷자리에 앉았을 때는 공부 잘하는 몇몇 아이들과 '작은 책'이라는 걸 만들어 바꿔보곤 했다. 그 '작은 책'은 A4용지를 두 번쯤 접은 크기로 된 '창작동화집'인 셈이었다. 선과 악의 싸움이며 공주 이야기 등을 쓰면서 나는 환상의 세계로 빠져들곤 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의 사귐은 '작은 책'의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어떤 아이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거나 그리움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어린 내 마음에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남긴 아이는 길게 앉았을 때의 내 짝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 짝은 꼴찌였던 것 같다. 나보다 키도 더 작고 얼굴은 무척 귀여웠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 학교 뒤l쪽으로 '천막동'이라 불리는 달동네가 있었다. 정말 천막처럼 허름한 무허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 내 짝은 천막동에 살고 있었다.
나는 내 짝과 잘 지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지만 그애에게 약간의 연민을 갖고 있었다. 선생님이 우리 줄 아이들에게 짝을 공부시키라고 하면 나는 그 아이가 쉽게 풀 수 있도록 힌트를 주어가면서 문제를 내곤 했다.
그애와 관련된 일들 중 명확하게 기억나는 일은 거의 없다. 나랑 이야기하는 게 즐거운지 나를 보고 웃으며 이야기하던 그 애의 귀여운 얼굴이 희미한 기억 속에 스쳐지나가고 조금은 주눅들어 있는 그 아이의 표정과 몸짓이 생각나기도 한다.
어느날, 어린 내 마음을 그 애가 정말 아프게 만들었다. 정말 아프게.....
겨울이었던가보다. 졸업 직전이었거나 졸업을 얼마 앞둔 어느날이었을 거다. 내 짝은 나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거 해. 실이 모자라서 작게 떴어."
아아... 그것은 털실로 뜬 마스크였다. 그애가 직접 뜬 거였다. 약간 어두운 옥색의 털마스크! 그 시절 난 꺼떡하면 감기에 걸리곤 했었다.
그 작은 마스크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를 향한 그 아이의 마음. 그 아이가 나에게 받았던 작은 위안.... 감기 걸려 콜록대는 짝을 그 아이는 유심히 바라보았겠지.
"아하.. 귀엽다. 마스크가."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는다. 난 약간 쑥스러웠고, 웬지 마음이 아파졌고, 그 아이가 너무나 좋았고, 많이 슬펐던 것 같다. (지금 그 장면이 시큰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걸로 보아...)
그 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가는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또 오랜 세월을 지내면서 난 내 짝의 이름도 그 시간들도 하나씩 잊어갔다. 그러나 마스크를 받을 때의 그 깊은 감동은 이렇게 선명하다.
어제 텔레비전에서 [내 마음의 풍금]을 방영했다. 그 영화와 그 노래를 무척 좋아하는 어느 선생님 말씀 때문에 그런 줄을 알았다. 다른 일 때문에 볼 수는 없었지만 비디오 시디로 몇 차례 보았던 그 장면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서로 이어지지 못한 애틋한 사랑의 사연, 그리고 정겨운 풍경들, 시골초등학교 모습과 함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추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 친구도...
내 마음 속 깊이 잠자고 있는 추억의 페달을 밟은 영화.
내 마음 속 그윽히 내려앉았던 그리움을 불러일으킨 노래.
그렇구나. 그 무엇인가, 그 누군가 내 풍금의 페달을 밟고, 내 풍금의 건반을 어루만지는구나.